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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판결문과 개인정보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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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부터 확정된 민·형사사건 판결문의 인터넷 검색과 열람이 가능해졌다. 법관·검사·소송대리인·사선변호인은 실명 그대로, 당사자·증인·감정인·국선변호인 등은 비실명처리된 판결문이 제공된다. 판결문공개 요구에 부응하면서도 사건관계인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함일 것이다. '개인정보'란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서, 해당 정보만으로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더라도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하여 알아볼 수 있는 것도 포함한다. 필자의 개인정보보호위원 경험에 비춰보면, 비실명화된 정보라도 IT기술의 발달로 다른 정보와 결합하여 개인을 식별하기가 점차 쉬워진다. 완벽한 비실명화란 애초에 불가능할지 모르며, 판결문공개에는 국가배상의 위험이 내재한다.

 

미국은 공공기관의 기록은 사전에 비밀로 분류하지 않는 한 공개한다는 'public records 공개원칙'이 확립되어 있고, 이는 판결문의 경우에도 같다. Miranda, Riley 케이스처럼 사건은 흔히 당사자의 실명으로 불려지며, 공개되는 판결문에는 사건관계인의 개인정보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공개재판에서 심리되고 공무원인 법관의 공무수행의 결과 작성된 판결문은 국가의 소유이자 공공의 재산이다. 작성자인 법관에게 저작권은 물론 공개여부를 정할 어떠한 권리도 인정될 수 없듯이, 사건관계인도 판결문 내 개인정보에 대해 자기결정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본다. 공적인 절차를 통해 사적인 분쟁의 결론을 얻었다면 부득이한 개인정보의 공개는 감수하여야 할 것이고, 이를 꺼린다면 조정이나 중재 등의 길을 택할 일이다. 프라이버시를 상정하기 어려운 법인까지 비실명화하는 것은 과잉보호다. 증인과 감정인은 공개된 법정에서 선서하고 증언과 감정을 하였으니, 공개될 판결문에도 실명을 걸고 책임을 지는 것이 맞다. 이로써 허위 증언과 불성실한 감정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을 수 있다. 다만, 가사사건 당사자나 성폭력사건의 피해자 등은 예외를 두어야 할 것이다.

 

비실명화 없는 판결문의 공개가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가. 헌법은 '공개재판주의'와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지, '비실명으로 재판받을 권리'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공개재판주의를 통해 확보하려는 재판절차의 공정성은, 어느 법관이 어떻게 재판했나는 물론, 누가 그 재판을 받았는가를 빼놓고는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법률로써 법원의 비실명화의무와 판결문공개에 따른 국가배상책임을 원칙적으로 면제하고, 법원은 판결문 작성시부터 개인정보 기재를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판결문을 표지와 본문으로 나누어, 집행력과 기판력의 주관적 범위를 정할 주소 등 상세인적사항은 표지에만 적어 법관과 집행기관만 열람케 하고, 일반에 공개되는 본문에는 성명만 기재하는 방안, 민감한 사실관계나 제3자의 인적사항 기재를 최소화하고 부득이한 경우 각주·미주로 처리하며 공개되는 판결문에는 숨기는 방안, 성폭력사건 피해자는 판결문 작성시부터 가명을 사용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사건관계자(특히 소극적 당사자)에게는 비실명화신청권을 부여하되, 명시적으로 신청하지 않는한 프라이버시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하며, 비실명화비용은 신청인이 부담하게 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하나의 판결문이 나오기까지 무수한 사법자원이 투입되고, 그 판결문은 이후 다른 분쟁을 방지하거나 해결하는 지침이 된다. 판결문공개의 최대 장애물인 판결문내 개인정보의 보호 필요성과 한계에 대해 전향적인 논의가 있기를 기대한다.

 

 

이숙연 고법판사 (서울고등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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