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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산악회 50년의 回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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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8일 법원산악회 창립 50주년 기념 등반대회가 있었다. 청계산에서 회장 김선수 대법관을 비롯한 회원들과 법원에서 퇴직한 OB 회원들 60여명이 함께 기념 등반을 하였다.


1969년 6월 29일 북한산 용암천 앞마당에서 16명이 모여 법원산악회를 창립하였고, 초대 회장에 나항윤 대법관이 추대되었다. 그 후 매주 일요일 20여명의 회원이 광화문에 있는 다방에 모여서 북한산 대성암 코스를 10여년 이상 동안 산행을 지속하였는데 점차 회원이 100여명 이상으로 늘자 1개월에 한 번은 전세 버스 1~2대를 빌려 장거리 등산을 하였다.

 

나 회장의 열성으로 1969년 10월 24일 전국 법원 등산대회를 개최한 이래, 해마다 전국의 20여개 법원 및 지원에서 500여명의 회원들이 참가하여 등산대회를 하였다. 제일 많이 한 등산코스는 우이동 고향산천앞 광장에서 집합해 소귀천 계곡을 거쳐 진달래 능선으로 올라가서 대동문-용암문-도선사로 하산하는 코스였다. 대회를 개최할 때마다 한국산악회 임원들이 많이 참석하여 심판을 맡아 주시고 이은상, 이숭령, 홍종인 회장님들이 축사를 하여 주셨다.

 

해마다 여름철에 캠핑대회를 개최하여 50여명의 회원들이 토요일 저녁에 소귀천 계곡에 천막을 치고 모닥불 파티를 하고, 다음날 새벽 일찍 백운대를 올라가서 일출을 보고 하산한 후 아침밥을 해먹었다. 텐트 속에서 자면서 밤새도록 들리는 소귀천의 계곡 물소리가 어떻게나 크게 들리는지 마치 폭포수가 떨어지는 것 같았던 것이 아름다운 추억이다.

해마다 정초에는 속리산 정상에 올라가서 山祭를 지냈으며 행사 때마다 법원산악회 등산기념 배지와 페넌트를 제작하였고, 법원산악회 회가를 만들어 합창하였다. 

 

1개월에 한번씩 장거리 등산을 하여 보니 20여년간 전국의 산은 모두 가본 것 같다. 

 

법원산악회 5주년 행사는 용문산에서 개최되었는데 120여명이 참가하였고(장순용 저, 산을 넘어서에서), 2013년 11월 9일, 경북 문경 주흘산에서 개최된 전국 법원 등산 대회는 1771명이 참가하는 대성황을 이루었다.(법률신문)

그동안 기억나는 등산 추억을 더듬어 보면 1972년 10월 8~9일, 가을 단풍이 절정이었던 설악산 천불동 등반시 기세훈 원장님이 수십번 감탄사를 연발하시던 모습, 1973년 1월 2일 속리산 산행시 당시 기온이 영하 16도여서 땀을 많이 흘리시던 허규 부장님의 뒷머리에서 땀이 흘러 내리면서 즉시 고드름으로 변하던 모습, 1974년 1월초 3일간, 밀양 표충사 법당에서 1박한 후 새벽에 출발하여 천황산, 신불산, 영취산을 주파하는 소위 영남 알프스 갈대밭 코스를 부산법원 산악회원들과 함께 10여 시간 주파한 후 양산 통도사로 하산하여 온천을 하였던 추억, 1975년 1월초, 산악회원 23명이 백담사에서 1박한 후 눈이 60cm나 쌓였는데도 오세암, 마등령, 희운각, 양폭 산장을 거쳐 천불동 계곡으로 하산하던 추억, 20여년 전에 이임수 회장님의 주최로 30여명이 울릉도 성인봉을 등반하고 독도를 탐방한 추억, 김석수 회장님의 77세 기념으로 김 회장님이 좋아하시는 오대산 정상으로 버스 1대를 가득 채운 회원들이 같이 등반하던 추억, 수년전 이홍훈 회장님의 초청으로 OB회원들이 함께 문경새재 옛길을 등반한 추억, 30여년 전에 영하 15도의 추위속에서 북한산 계곡에서 룩셋 속에 들은 맥주가 꽁꽁 얼어서 못 마시던 추억,나항 윤 회장님의 등반 777회(1974.8.15)/ 836회(백운대 높이, 1975.7.27)/ 900회(1976.10.17) / 1000회 및 회갑기념 행사(1978.8.20) / 1500회 및 70세 생신기념행사(1987.12.20)를 회원들이 북한산을 등반 후, 광화문에 있는 맥주홀에서 축하행사를 하던 추억. 장순용 회장님의 산악 수필집 발간과 아울러 회갑기념 때에는 고시 동기인 이일규, 안병수 대법관님이 함께 등반하신 후 광화문 맥주홀에서 축하행사를 하던 추억이 모두 아름다운 추억으로 떠오른다.

전국의 어느 산을 가보아도 북한산만큼 힘차고 아름다운 산을 볼 수가 없다. 북한산의 힘찬 화강암은 마치 금강석 같은 고귀한 자태를 보인다. 그래서 북한산을 등반할 수 있는 사람은 10억원짜리 골프장 멤버십을 가진 사람보다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운동이 되려면, 땀이 나고 숨이 차야 하는 것이 기본이라 할 것인데, 가장 좋은 운동이 바로 등산이라 할 것이다.

 

더욱이 각종 암투와 인간세계의 과오가 점철된 소송사건을 한주일에 수십건 처리하여야만 하는 법관 및 법원직원으로서는 한주일에 한번은 자연속에서 신경을 쉬면서 체력을 단련하여야만 할 것이다.

사도법관 김홍섭님은 "내가 山을 좋아하는 것은 야릇한 풀냄새, 나무냄새, 岩石의 기묘한 선, 기교에 의해 물듦이 없는 피조물의 근본자태, 그 앞에 내 마음 문을 열 때 분명히 나는 거기서 神의 손자국과 호흡을 느낀다"하고(그의 수필집 '山을 넘어서'에서), 피천득 선생님은 "대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웅장함을 볼 때마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과 같은 좋은 음악을 들을 때 신의 존재를 느낀다"고 하였다. 노산 이은상은 "산이 진선미의 상징"이라 했고, 홍종인 선생은 "산이 준엄한 스승이요, 위대한 사상가"라 했으며, 육당 최남선은 "한국의 산하는 나라의 역사이고 철학이며 시이고 정신이다"라고 하였다. 김영도 선생님(1977년 에베레스트 초등원정 대장)은 "등산은 철학이고 종교이며 행복, 자유, 탈출을 찾는 것이다. 등산은 구도자의 길이고, 무상의 행위이고 고독과의 싸움이며 자기 극기의 길이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기에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이 수백만명의 등산 인구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20여년간 법원 산악회원으로서 열심히 참가 하는 동안 나항윤, 강안희, 장순용, 안병수, 김기홍, 김홍근, 박우동, 김석수, 이임수, 이강국 회장님들의 열성으로 매주일, 매달마다 수십명의 회원들이 열심히 참가하였고, 등산대회 때는 수백명이 참가하여 법원의 제일 큰 잔치 마당 같은 행사를 치루면서 법원 산악회가 발전하여 왔다.

월간 '山' 1997년 2월호에서 법원 산악회의 산악활동을 게재하였고, 나는 법원 산악회에 관련한 수필을 '등산예찬'이란 제목으로 월간 '사람과 산' 2008년 3월호에 발표하였으며, 한국 산서회에서 발간하는 山書 24호(2013.12 발간)에 나항윤저 '山行 1000회를 맞아 회고한다', '山行 1500회의 발자취'에 관한 수필을, 山書 28호(2018.1 발간)에 장순룡저 '山을 넘어서', '오늘도 산길따라'에 관한 수필을 발표하여 두분의 평생에 걸친 산행내용을 소개한바 있다.

 

사단법인 한국 산서회는 국내외 산악서적과 산악문화를 연구하는 단체로서 매월 山書와 산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하고, 해마다 '山書'를 발간하고 있다.

80이 넘은 내가 요즈음 매일 아침 앞산을 오르고, 주말마다 산행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20여년간의 법원산악회원으로 체력을 키운 덕분인 것 같다.

 

강안희 회장님이 102세까지 장수하신 것도 20여년간 북한산의 精氣를 받으신 덕택이라고 말씀 하셨다. 나는 등산을 하면서 나항윤 회장님이 항상 "强壯하고 善良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평생동안 등산을 하라”는 말씀과, 장순룡 회장님이 늘 "나는 1주일의 전 3일은 산에 갔던 추억에 살고, 나머지 후 3일은 산으로 가는 희망에 산다"라고 하신 말씀을 가슴깊이 느낀다.

 

어언 법원산악회가 半百年이 지났으니 법원산악회를 거쳐간 회원들이 수백명 아니 그보다도 훨씬 많을 것이다. 모든 회원들이 친정같이 정들었던 법원산악회의 무궁한 발전을 함께 기원한다.

 

 

김준열 변호사 (前 법원산악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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