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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상추밭에서 나오는 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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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주말 아침이 밝았다. 주말이라 늦잠을 더 자고 싶기는커녕 나는 일찍 잠에서 깨어 주말농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지난 주에 옮겨심은 어린 모종들이 부쩍 더워진 날씨를 잘 이겨냈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그러다 그새 잘 자라 밭을 푸르게 수놓은 상추며 깻잎, 아욱, 가지를 보고는 반갑고 대견스러운 마음에 안도감이 밀려온다. 그리고 금세 밭으로 달려가 잡초를 뽑아주고 흙을 북돋아 주고 시원한 물을 한가득 뿌려주고 나면 녀석들이 싱그러워 춤을 추는 듯한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차오른다. 

 

그렇게 한참을 주말농장에서 땀을 흘리고 상추며 각종 야채를 들고 돌아오는 길은 더없이 행복하다. 초여름 야채 소출이 풍성해 장모님 댁은 물론 아파트 옆집, 아랫집에 더해 아들 친구네까지 아낌없이 나눠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유기농으로 기른 귀한 야채지만 우리 가족들이 다 먹기엔 차고 넘치기에 나눠주는데 아깝다는 생각은 하나 없다. 오히려 반가이 맞아주는 이웃이 더 고맙게 느껴지는 게 신기할 정도다. 

 

사실 지난 어느 재판기일에 비슷한 경험을 하였다. 원래 잡혀있던 몇 건의 복잡한 사건들이 소 취하 되어 오전에 한 사건만 진행하게 되었다. 그 날 우리 법정엔 여유가 넘쳤다. 당사자에게 충분히 진술할 시간이 주어지고 재판부에서도 더욱 편안한 분위기로 당사자를 존중하며 소송지휘를 하게 된 것은 물론이었다. 그러자 당사자는 그 시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법정을 나가고 있는 게 느껴졌다. 

 

물론 재판에서 당사자가 편안한 분위기에서 충분히 변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판사가 인심을 쓰는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헌법적 책무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는 정책은 공허한 메아리만 남길 뿐이다. 이제는 판사들이 시간에 쫓기지 않고 한 건 한 건 여유를 가지고 재판하는 것이 미덕인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행복한 법관이 넉넉한 법정을 만든다. 그리고 그 법정의 여유는 자연스레 국민들에게 나눠질 것이다.

 

 

김영기 판사 (서울중앙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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