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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택시 안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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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일이다. 아침에 택시를 타게 되었다. 출근 시간에 택시를 타면 평소 목적지로 맞은 편 00아파트를 이야기하는데, 그날따라 그만 법원으로 가 달라는 말이 바로 나와 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님이 잠시의 침묵 뒤 “판사님이시죠?” 하신다. 아차 싶었지만 유독 피곤하였던 탓인지, 거짓말에 서툰 안타까운 주변머리 탓인지, 그만 "아~ 예" 하고 웃고 말았다. 판사임이 알려지고 편안한 소리 듣기가 쉽지는 않을 터라 약간 긴장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몇 마디 감탄사 후 바로 물어보신다. “혹시 000 판사님이라고 아세요?” 알아도 모르고, 마땅히 몰라야 할 일이다. “예, 모르는 분이네요.” 그래도 아랑곳없이 말씀을 이어 가신다. “제가 그분한테 재판이 있었거든요.” 

말씀인즉슨, 재개발 구역 내에 집을 가지고 있었는데 분양권을 받지 못하여 소송을 하였다고 하신다. 몇 가지 질문이 이어지고 어쩔 수 없이 원론적인 부분만 답변을 드렸는데, 대답이 너무나 순순하시다. 사실은 그러그러하여 이미 1심에서 패소하였고, 지금은 항소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이 의외다. “000 판사님이 진짜 신경 많이 써 주셨거든요. 될 만하면 당연히 해 주셨을 텐데, 그 분도 안 된다고 하신 걸 보면 안 될 일이 맞지 싶어요. 그래도 저한테는 그게 너무 큰 재산이고 도저히 포기가 안 되어 항소장은 냈는데 진짜 죄송스러워서…. 재판에 불만이 있어서 항소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꼭 해 드리고 싶더라고요.”

순간 긴장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어느덧 내릴 곳이 가까워졌고, 거스름돈이라도 사양하고 싶은데 마침 카드 결제다. 판사님 태우고 와 좋았다는 기사님의 밝은 인사를 뒤로 하고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수화기를 들었다. 꼭 말씀 드리고 싶었다. 재판 잘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판사님의 선의와 노력이 신뢰로 돌아왔고, 덕분에 저까지도 정말 즐거운 출근길을 얻었노라고 말이다.


이주영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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