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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구속기간 제한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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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의 정점에 있는 양승태 피고인에 대한 첫 재판이 열렸다. 구속된 지 4개월 만이다. 그동안 공판준비기일만 5차례나 열렸다. 증거의견서 제출기한을 지키지도 않았고 검찰이 제시한 증거 대부분 부동의 하여 증인을 200여명 이상 불러 심문해야 하는 등 이미 재판은 장기화 조짐이다. 첫 공판기일에서 공소장을 ‘근거 없는 소설의 픽션’이라고 깎아내리면서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해 앞으로의 재판이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법률전문가, 재판의 달인, 법관 생활 42년 경력의 피고인은 역시 달랐다. 2개월 남은 1심 구속기한을 넘길 가능성은 기정사실이다. 앞으로 1주일에 두 번 공판이 열린다고 하지만 충분한 공판준비를 이유로 방어권의 무기를 들이대면 불구속 재판의 전략은 통하게 될 것이다.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면서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해야 할 재판부가 직면한 딜레마다.


불구속 재판이 진행되면 피고인을 법정에 출석시키는 것이 쉽지 않아 재판이 늘어질 것이다. 아마도 적폐청산을 국정과제로 삼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 집권후반기에는 지지도가 떨어져 정치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변하길 기대하고 있을 수도 있다. 피고인의 방어권은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지만 통상적인 재판에서도 방어권의 이름으로 포장된 과도한 지연 전략이 통하는 것인지, 아니면 법관 전관 피고인에게 주어진 보이지 않는 특혜인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현행 형사소송법상 구속기간제한을 넘어서 피고인을 가두어둘 방법은 없다. 1심 6개월이 최대다. 검찰은 추가적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 받은 피고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처럼 양승태 피고인도 추가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6개월 더 구속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지만, 어쨌든 법률전문가 두 집단의 기싸움은 통상적인 재판과는 다른 모습이다.

구속기간을 제한하는 것은 미결구금의 부당한 장기화를 막자는 취지다. 구속기간 만료 전에 1심 재판을 마쳐야 하니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는 효과도 있다. 헌법재판소도 신체의 자유의 침해를 억제하기 위한 제도로서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재판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지연되면 구속기간 제한은 충실한 심리를 방해한다. 증거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래서 1심 재판을 충실하고 신중하게 진행하기 위해 구속기간을 늘리든지 구속기간 제한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만 피고인의 구속기간을 제한한다는 비교법적 근거를 대기도 한다. 피고인 인권보장을 위한 제도가 오히려 인권침해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구속기간 제한에 맞춰 집중적으로 신속하게 심리를 진행하다보면 피고인은 충분한 방어준비에 시간이 부족하여 방어권이 제약될 수 있다. 구속기간 제한의 딜레마다. 그렇다고 법을 개정해서 구속기간 제한을 풀 수는 없다. 인신구속 남용이 인권침해의 전형이었던 과거를 떠올리면 법 개정에 국민적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방어권의 이름으로 교묘하게 포장된 의도적 소송지연 전략인지를 면밀히 살펴 실체적 진실발견과 신속한 재판,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 등을 고려하여 소송지휘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할 것이다.


하태훈 교수 (고려대 로스쿨)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