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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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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로펌을 운영하는 선배가 신입변호사를 뽑고 싶다고 연락해왔다. 우선 학내에 게시할 글을 보내왔는데, 곳곳에서 열정을 강조하고 있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열정! 열정 있는 인재를 원합니다!” 위험하다. 전화를 걸었다.


“요즘 학생들은 열정이란 말에 거부감이 커요. 열정보다는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다는 걸 강조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성적이나 스펙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그저 열정을 요구했을 뿐인데?” “차라리 성적이나 스펙을 요구하는 편이 거부감이 덜할걸요.”

선배는 열정이란 단어를 포기하지 못했다. 내 예상대로 학생들은 쑥덕댔고 지원자는 없었다고 한다. 아아, 아름답던 단어 ‘열정’은 어찌하여 이리도 천덕꾸러기가 되었는가?

20년 전 군법무관 시절, 로펌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워라밸’ 따위를 말하는 분은 없었고, 어려운 일을 많이 해야 한다는 걸 숨기지 않았다. 심지어 밤새 일하고 진한 커피 한잔으로 정신을 추스른 뒤 새 와이셔츠로 갈아입고 또 하루를 시작할 때의 상쾌함에 대해 얘기하는 분도 계셨다. 사각거리는 새 셔츠의 좋은 느낌이 내게도 전해지는 듯했다. 결국 나는 그 열정에 끌려 그 로펌에 들어가서 10년 넘게 일했다. 지금 시각으로는 리크루트 자리에서 그런 말씀을 하는 분이나 그걸 듣고 끌린 사람이나 다들 제 정신이 아니었다.

왜 '그때는 맞던 것이 지금은 틀리게' 되었을까? 가치관도 변했지만, 일방적으로 열정을 강조하며 보수는 제대로 주지 않는 ‘열정페이’ 관행도 그 원인일 것이다. 변호사 보수도 점점 낮아지는데다가 앞으로 나아지리라는 보장도 없으니, ‘열정’을 강조하는 고용주는 일단 의심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열정’에 끌렸던 이유도 열정을 다해 일하면 그에 맞는 경제적·사회적 보상이 주어진다는 암묵적인 전제가 확고했기 때문이다. 그게 흔들린다면 나도 끌렸을 리가 없다.

시대는 변했다. 후배들에게 무작정 열정을 요구하거나 열정이 없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열정이란 미덕 자체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열정적으로 강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는 강의평가에 여전히 보람을 느낀다. 남에게 열정을 요구하지는 말되, 나의 일에 열정을 다하는 자세는 잊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천경훈 교수 (서울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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