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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한국 법정에서 웬 영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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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차를 운전하다 교통경찰 사이렌 소리라도 듣게 되었을 때 잔뜩 긴장하였던 기억은 많이들 가지고 있을 것이다. 판사라고 예외는 없다. 만일 작은 실수로 소송절차에 휘말리게 되는 경우 어색한 외국의 법정에서 언어마저 외국 말로 임해야 한다면 나와 내 가족의 권리를 충실히 지킬 수 있을지 걱정을 넘어 공포가 밀려온다. 


작년에 OECD의 초청으로 카자흐스탄에 방문하여 흥미로운 국제 법원을 소개받았다. 카자흐스탄은 최근 영국의 은퇴한 법관들을 판사로 임명하여 법원을 구성하고 상사 관련 투자분쟁의 경우 당사자들이 원하는 경우 그 법원에서 재판받을 수 있게 하였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카자흐스탄은 영어가 보편화되어 있지도 않고 보통법 국가도 아니며 사법제도도 소련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에도 국제 법원이 영어를 법정 언어로 채택하고 영미법을 절차법으로 채택하였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국제 법원의 모델로서 싱가포르는 그보다 더 이전인 2015년에 SICC(국제상사법원)를 설립하여 매우 성공적으로 정착시켜 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작년 6월부터 특허권 등에 관한 사건에서 법정에서 영어변론을 허용하는 법률정비를 마치고 이제 사법 수요자의 적극적인 이용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 법정에서 웬 영어변론 허용인가? 외국인도 우리 법정에 당사자가 되어 우리 판사에게 재판을 받는 상황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자기 언어로 주장을 맘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법이 열린 자세로 국제적 수준의 사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자신감의 표현일 뿐 아니라 세계인이 우리 법정에서 자신의 법적 주장을 맘껏 펼칠 수 있게 하는 인류애 발로의 측면에서도 질적 도약이 될 것이다.

자기의 말로 자기의 권리를 맘껏 주장하고 펼칠 수 있는 법정에는 국경이 있을 이유가 없다. 외국에서 교통사고가 나도 나에게 익숙한 말로 변론할 수 있다면 그 절차적 만족감은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과 특허법원에 설치된 국제재판부에서도 언어의 장벽이 없이 누구나 마음껏 변론하고 만족할 수 있는 풍경이 많이 펼쳐지기를 기대해 본다.


김영기 판사 (서울중앙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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