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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형사소송 전자화, 투명하고 공정한 형사사법으로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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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에서 형사로 사무분담이 바뀌면 석기시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마저 든다. 최근 곳곳에서 제기되는 형사전자소송 논의를 보며, 십여년전 진행됐던 형사절차 전자화 사업에 법원 실무자로 참여했던 필자로서는 반갑기만 하다.


수사 및 재판기록의 영구보존과 공개는 수사권, 기소권 및 재판권의 행사가 적법하고 공정한지 사전에 스스로 점검하고 사후에 통제받도록 하는 기본 전제라 할 것이다. 기록의 전자화는 그 물리적 제약을 없애는 가장 유용한 수단이 된다. 향후 수사기록은 기소와 동시에, 재판기록은 실시간으로(또는 적시에) 피고인 및 변호인(이하 피고인)에게 전자문서로 열람, 등사가 보장되어야 하고, 원칙적으로 모든 판결문과 확정된 재판기록은 국민에게 전자적으로 공개됨이 바람직하다.

수사기관 조서 작성 시 요구되는 진술자의 이의·의견의 추가 기재, 간인, 기명날인·서명(형사소송법 제244조)의 기술적 구현은 전자화의 큰 걸림돌이었다. 피의자에게 공인인증서 지참을 요구하거나 1회용 인증서를 발급하는 방안은 현실성이 낮고, 완성 전 열람과 수정 방법도 난제이다. 그런데 형소법이 마련한 위 장치들은 전자적으로도 그대로 구현되어야 하는가. 위 장치들은 역설적으로 수사단계 진술의 부인을 방지하고 조서에 막강한 증거능력과 증명력을 부여하는 역할을 해왔다. 해결책은 조서의 기술적 구현 수단을 가볍게 하고, 그 증거능력도 가볍게 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수사기관 조서가 형사소송 전자화의 발목을 잡고 있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에, 진술자의 이의나 의견은 조서 말미에 추가 입력하거나 진술자의 음성녹음 또는 서명패드 기재내용을 파일로 전자조서에 첨부하고 진술자의 서명은 서명패드로 받으며 작성자의 전자서명으로 조서를 완성하는 방안, 조사의 전과정을 촬영·녹음한 영상물·녹음파일을 본증으로 인정하는 방안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와 병행하여, 조서의 작성형태(종이, 전자, 영상물, 녹음파일)나 작성기관을 묻지 않고 진술자가 내용을 부인하면 증거능력을 부정함으로써, 공판중심주의와 형사전자소송을 동시에 앞당길 수 있다.

입법적으로는 ‘민사소송등에서의 전자문서이용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범위(제3조)에 ‘형사소송법’을 추가함으로써, 민사전자소송과 같은 형태의 형사전자소송 시행이 가능하리라 본다. 수사기관 조서 등은 우선 스캔하여 제출하되, 형소법 개정으로 전자조서 등의 법적 효력이 인정되고 그 증거능력에 관한 규정이 정비된 후에는 파일로 제출하면 된다. 검사는 기소와 동시에 형사전자소송시스템에 증거를 일괄 제출하여 피고인이 열람할 수 있게 하며, 재판부에는 증거채택 후 열람권한이 부여되도록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도 각 형사사법기관은 그 시스템 및 PC에 각종 수사 및 재판기록을 저장하고 있다. 원본과 다를 수 있음을 감안하고도 방어권 행사를 위하여 이를 필요로 하는 피고인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열람, 등사를 허용함이 어떨까. 이는 형사소송 전자화의 작지만 의미있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사법개혁에 관한 거창한 담론 이전에, 피고인의 방어권이 보장되고 보다 투명한 형사사법시스템의 구축에 관하여도 구체적 논의가 진척되기를 기대한다.


이숙연 고법판사 (서울고등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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