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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 새끼줄과 동전꾸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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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 임상옥을 다룬 드라마 상도가 인기리에 방영된 적이 있다. 그 중 한 장면인데, 내 기억은 이렇다. 어느 날 부잣집 주인에게 남루한 행색의 사내가 독대를 요청했다. 주인이 그 청년을 만나자, 살기가 찬 그는 품속에서 시커멓게 탄 새끼줄을 조용히 꺼내어 내려놓는 것이 아닌가! 주인은 아무 말 없이 전대에서 동전꾸러미를 꺼내어 건넸고, 그 사내는 조용히 그 방을 나갔다. 이를 지켜보던 주인의 어린 딸이 물었다. “아버지, 왜 돈을 준 것입니까?” 아버지는 “사내가 내민 탄 새끼줄은 돈을 주지 않으면 이 집을 불사르겠다는 뜻이다. 그는 멍석말이로 목숨을 잃을 것을 각오하고 온 것이야. 사람을 대할 때 부딪혀야 할 때도 있으나 물러서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처음 검사가 되던 해 할아버지 한 분이 찾아오셨다. 늦둥이로 둔 외동아들이 약 5년 전 교통사고로 사망하였고, 상대는 과실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져 내사종결 되었다고 한다. 그는 부실수사라며 진정서와 고소장을 반복해서 계속 제출해 오고 있던 중이었다.

그는 나를 만나자 “죽은 아들이 꿈에 자꾸 나타나 억울하다고 한다. 수사가 잘못된 것이다”라고 하더니,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이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으면, 지하철에서 자살하겠다. 지하철에 불이나면, 당신 때문이다”라고 했다.

다음 날 그 분은 어제와 똑같은 이야기를 마치 테이프를 틀어놓은 것처럼 처음부터 다시 반복했다. 협박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선배 조언도 있었지만, 나는 당시 그 분에게 깍듯이 대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 후 그 사건을 공소시효 도과로 인한 공소권없음으로 종결했다. 다행히 지하철 화재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 분은 다시 진정서를 제출했고, 다른 검사실로 찾아가는 그 분을 복도에서 본 것이 마지막이다.

우리는 가슴에 응어리가 맺힌 사람을 만나곤 한다. 경청, 공감, 존중 등이 얽혀있는 마음을 풀어줄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들었다. 내가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그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을까? 탄 새끼줄을 가슴에 품은 사람에게 동전꾸러미를 줄 수 있을까? 그 분이 살아계신다면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 편안하시길 기원해 본다.


최두천 과장 (법무부 인권조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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