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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판사의 숙제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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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보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훨씬 어렵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무언가 작성된 것에 대해 의견을 더하고 보다 설득력 있고 옳다고 여겨지는 주장을 선택하기는 쉽지만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기란 그에 몇 곱절 힘이 들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얼마 전 한 변호사님이 농담처럼 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변호사는 준비서면을 제출하고 법정에 갈 때 숙제검사를 받는 기분이고 특히 판결선고 날에는 성적표를 받는 기분이라는 말씀이었다.

오늘도 변호사들이 주장을 빼곡이 담아 준비서면을 재판부에 제출한다. 이에 질세라 상대방 변호사는 곧이어 상대의 주장을 반박하고 관련 증거를 찾아 제출한다. 심지어 오전 11시 재판 사건인데 같은 날 10시 30분에 장문의 준비서면을 제출하는 당혹스런 경우도 보았다. 이런 때에는 숙제를 해내고 말겠다는 절박한 마음이 전해진다. 그러나 학창시절 벼락치기로 보고서를 제출한 후에 a+학점을 받은 기억이 거의 없다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통적일 것이다.

사실 판사들도 재판하면서 숙제검사를 받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바로 재판이 항소되어 기록이 판결문과 함께 상소심에 송부될 때이다. 고심하여 선고한 사건의 상소심 결과를 확인할 때 살짝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심지어 상급심 판사님과 함께하는 회의 자리에는 왠지 긴장감이 감돌기도 한다.

요즈음 판결서의 완전한 공개가 이슈이다. 이미 2013년 1월 1일 이후 확정된 형사사건, 2015년 1월 1일 이후 확정된 민사사건의 판결문이 하나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전면 공개되고 있고 임의어 검색까지 가능하다. 이제 여기서 나아가 미확정 판결문까지 어떠한 요건과 범위에서 공개할지가 논의되고 있다. 판사들도 국민들에게 직접 숙제 검사를 받는 기분이 들 날이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나 자꾸 문을 열고 보여주면 오해도 풀리고 믿음이 생긴다고 믿는다. 판사는 완벽한 존재라는 허상만 버리면 될 일이다.


김영기 판사 (서울중앙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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