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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과 소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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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1941년 6월 22일 소련도 기습 공격하였다. 전격전으로 단기간에 소련을 붕괴시킬 계획이었던 독일은 300만 명의 병력으로 전체 전선에서 소련을 공격하였고, 이들 병력을 3300대의 전차와 2000대의 항공기가 지원하였다.


소련 전선에서도 독일군의 전격전은 성공을 거두었다. 독일 공군은 침공 첫날 소련의 항공기 1200대를 파괴하였고, 기갑사단은 신속히 진격하여 소련군을 고립시킨 후 포위하였다. 뒤따른 보병은 포위된 소련군을 손쉽게 격파하였다. 독일군은 1941년 9월 26일까지 약 300만 명의 소련군을 포로로 잡았다.

이에 대하여 소련은 지구전으로 대응하였다. 독일군의 빠른 진격 속도에도 불구하고 생산 시설 일부를 동쪽으로 이동시킬 수 있었고, 특히 무기와 철강 시설을 우선하여 이동시켰다. 겨울이면 독일군의 작전은 중단되었으나, 소련의 생산능력은 계속 성장하였다. 1943년 소련군은 독일군에 대해 공세로 전환하였다. 모두가 알듯이, 독소전쟁의 역사적 결말은 독일의 패배, 소련의 승리였다.

초임 판사 시절 어느 판사님으로부터 독일군 스타일 판사와 소련군 스타일 판사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A판사는 독일군’이고 ‘B판사는 소련군’이라는 것이었다. 사건 처리를 A판사는 전격전으로 하고, B판사는 지구전으로 한다는 농담이었다.

당시 어느 스타일의 판사가 더 좋다는 것인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처음에는 일 처리가 빠른 A판사를 칭찬하는 말로 이해했다. 그러나 그런 단순한 의미는 아닐 거라는 점에 생각이 미쳐 B판사 스타일이 좋다는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하였다가, 그렇다면 사건 처리가 늦은 B판사 스타일의 장점은 무엇인지 금세 떠오르지 않아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전격전이 좋은지 지구전이 좋은지 모르겠다. 꾸준히 오래 변치 않게, 가족도 챙기고 주변도 챙기고 나 자신의 건강도 챙기며 일해야 한다는 것을 점점 깨달아 가지만, 전격전을 펼치며 몰려오는 업무의 기갑사단에는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전격전으로 대응하고 만다. 매년 오는 짧은 봄, 역시 매년 하면서 지키지 못하는 다짐을 한다. 이번 봄의 지구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정성민 판사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