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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책가방 멘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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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로서 10여 년 경력을 쌓게 되면 주어지는 가장 향긋한 보상 중 하나는 바로 1년 내외의 해외연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시간은 가족들과 함께하며 재충전의 시기가 되기도 하고 사건 해결에만 매달려온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그야말로 황금같은 시간이 된다. 

 

몇 해 전 해외연수 기회에 외국 대학에서 LL.M. 과정을 이수하게 되었을 때, 나는 새내기 로스쿨 학생들과 나란히 교실에 앉아 강의를 듣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했다. 10년 넘게 한국에서 판사로 재직하였다는 자긍심이 앞선 나머지, 학생으로 돌아간 것이 못내 어색하고 왠지 지위가 강등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데 이제 그때의 생각을 돌아보게 된다.

올해는 사법연수원 입소생이 단 한 명이라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한 해 1000명이 넘는 연수생을 받아들이고 배출하던 곳이 혹시 황량한 곳이 되지 않을까 궁금해하는 사람도 생겼다. 그러나 사법연수원은 요즘 또 다른 열기로 채워지고 있다. 2014년 개원한 사법정책연구원에 이어 작년에는 법원도서관이 사법연수원 청사에서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가방을 메고 연수원으로 모이는 판사들이 강의실을 연중 채우고 있다.

재야에서 오랜 경력을 쌓고 임관하는 판사들이나 재판연구원뿐만 아니라 재판경력이 10년 혹은 20년을 훌쩍 넘는 판사들도 다시 학생의 모습으로 돌아가 사법연수원으로 모이고 있는 것이다. 지식재산권 소송, 증권거래와 기업금융 소송 등과 같은 사회나 법의 변화를 빠르게 반영해야 하는 재판 분야는 물론 민사재판이나 형사재판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매년 새롭게 제기되는 법률적, 학문적 이슈와 국민적, 시대적 요구를 재판에 합리적으로 반영할 방안을 찾기 위해, 판사들이 강의실에서 열띠게 강의하고 서로 토론한 후 다시 법대로 돌아오는 모습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일견 어색해 보이는 책가방 멘 판사의 뒷모습은 열정과 함께 학자와 같은 순수함까지 더해준다. 그리고 이렇게 판사들이 연구에 흘리는 땀은 국민들에게 더 이해할 수 있는 재판, 고개가 끄덕여지는 재판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영기 판사 (서울중앙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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