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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취재수첩] 판사들의 '워라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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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서울남부지법 A판사가 갑작스런 호흡곤란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사망했다. 3년도 채 되지 않아 지난해 11월에는 서울고법의 B판사가 돌연사했다. 


A판사는 숨지기 3주 전 안면마비 증상이 왔지만 일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B판사는 사망 열흘 전 시아버지상을 치르고 상중에 밀린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주말에 출근해 새벽까지 야근한 뒤 집으로 돌아와 쓰러진 사실이 알려져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A판사 사망 이후 판사들의 업무 경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별다른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채 묻혔다. 그렇게 A판사의 죽음이 기억 속으로 잊혀져 가던 중 B판사의 비보가 들려왔다. 그제서야 법원 내부에서는 "더 이상 마른 헝겊 쥐어짜는 식은 안 된다. 이제는 정말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김명수 대법원장도 B판사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다시는 이 같은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게 여러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다짐들이 또다시 공염불에 그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될 즈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한 지방법원에서 전국 최초로 업무 경감을 위한 의미있는 실험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8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수원지법(법원장 윤준)의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업무개선방안'이다. 사무분담 별로 월별 적정 선고 건수를 제안하고, 합의부 운영사항에 대해 재판장과 구성원들이 사전 협의를 하도록 권고하는 등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다. 판사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라고 한다.

공무원인 판사들이 제 몸 편하기만 바라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개인의 삶을 포기하고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대는 끝났다. 특히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됐지만 여전히 법조계만은 예외였다.

일과 삶이 균형을 잡아야 업무에서 더 큰 효율,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판사들의 몸과 마음이 여유롭고 건강해야 국민에게 좋은 재판도 나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원지법의 실험은 의미가 매우 크다. 아직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도 이젠 일과 삶이 어느 정도는 균형을 잡도록 업무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명확하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