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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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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아인 70대 후처가 평생 함께 살아 온 80대 본처를 둔기로 살해한 데 대하여, 집행유예가 아니라 상당한 기간의 실형을 선고한 사건이 최근 있었다. 인터넷 댓글을 보니, 아무리 그래도 살인은 살인이고 실형은 마땅하다는 견해와, 할머니의 답답하고 기구했을 인생과 그동안 쌓였던 울분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은 판결이라는 비판이 팽팽하게 공존한다. 같은 것을 같다고, 다른 것을 다르다고 판단하는 것이 바로 판사의 일이라고 배웠는데, 어째 이 일은 연차가 쌓일수록 더 어려워지기만 한다.


경제적으로 궁하여 십만 원을 훔친 것과, 재산이 넉넉한데도 순간적인 장난기로 십만 원을 훔친 것은 똑같은 십만 원 절도인가. 같은가 다른가. 다르다면 누가 더 나쁜가. 영원히 너만 바라보겠다는 혼인의 맹세가 채 시들기도 전인 신혼에 바로 바람을 피운 것과, 오랜 세월 고락을 함께 한 조강지처를 두고 바람을 피운 것은 같은가 다른가. 다르다면 누가 더 나쁜가. 전화 한 번의 보이스 피싱으로 천만 원을 사기 친 것과, 오래 사귄 사이에서 그 관계를 이용하여 천만 원을 사기 친 것은 같은가 다른가. 다르다면 누가 더 나쁜가. 가까운 사이로 오래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 저지른 성폭력과, 길에서 우연히 한 번 마주친 사람에게 저지른 성폭력은 같은가 다른가. 다르다면 누가 더 나쁜가. 청렴과 도덕성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았던 사람이 받은 뇌물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받은 것보다 더 나쁜가. 얼마나 더 나쁜가. 유명한 사람이 저지른 범죄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 저지른 것과 다른가. 더 나쁜가. 얼마나 더 나쁜가.

기록을 보면 횟수나 금액만으로는 다 잴 수 없는 각자의 인생의 무게가 느껴진다. 양형기준으로는 도저히 다 담을 수 없는 그 모든 안타깝거나 혹 분노하게 하는 사정들을, 모두 무겁게 살펴야 옳은가, 그에 냉정히 눈을 감아야 옳은가.


이주영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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