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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대한민국임시정부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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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는 3·1운동 이후 일본통치에 항거하기 위해 1919년 4월 11일 수립되었고 같은 날 대한민국임시헌장(10개조)이 제정·시행되었는데, 올해가 100주년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오천년 동안 한 번도 시행된 적 없는 '민주공화제'를 선포하였는데(임시헌장 제1조), 지금에야 공기처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그 때는 얼마나 창의적이고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졌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임시헌장은 '임시정부는 임시의정원의 결의에 의하여 통치된다'고 하고(제2조), '국토회복 후 만일개년 내에 국회를 소집한다'고 하여 의회민주주의를 규정하였으며(제10조), '남녀, 귀천, 그리고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하다'는 원칙을 세우고(제3조), 국민에게 '신교, 언론, 저작, 출판, 결사, 집회, 신서, 주소 이전, 신체, 그리고 소유의 자유', 그리고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인정하여 헌법상 기본권을 선언하였다(제4조, 제5조). 이와 함께 임시헌장은 교육, 납세, 그리고 병역의 의무를 규정하였다(제6조). 그야말로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필요한 기본요소를 모두 갖춘 헌법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로부터 100년.

나라를 되찾을 희망을 가지기 어려운 암흑의 시기에 자주독립과 민주공화제의 헌법 기초를 마련한다는 것은 절망의 낭떠러지 끝에서 한줄기 빛을 잡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와 같이 절박한 순간에도 '인류의 문화 및 평화에 공헌'하고자 하는 숭고한 뜻을 잊지 않았고(제7조) '평화적 독립'을 선포하였다(제0조, 전문)는 것은 우리 국민의 정체성을 정의한 것이라고 본다.

그 밖에도 임시헌장은 급진적인 사법제도의 개혁이라고도 볼 수 있는 '생명형, 재산형'을 전폐하고, 여성 인권을 침해하는 '공창제'도 폐지하였을 뿐만 아니라(제9조), 국가상실의 책임이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구황실을 우대하는 배려까지 놓치지 않았다(제8조).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대한제국을 계승한 것도 아니고 선거를 통해 수립된 것도 아니어서 현행 헌법에서 상정하는 민주적 정당성이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일제 치하에서 민족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독립의 희망을 놓지 않게 하는 등대가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미국 연방헌법도 1777년 독립을 위해 모인 대륙회의에서 기틀이 잡혔지만 그것이 미국 헌법의 기초와 정신이라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만약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지 않았거나, 수립되었더라도 헌법 즉 민주주의에 기초한 임시헌장을 제정하지 않았더라면 대한민국의 헌법적 정체성은 얼마나 오랫동안 방황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이 얼마나 위대한 역사적 순간인가? 1919년 임시헌장을 기초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요인이 지금도 살아계시고 임시헌장의 정신이 100년 동안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을 지켜보고 계셨다면 어떠한 생각을 하고 계실까?

이렇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이 뉴스의 홍수에 떠밀려 그 의미를 깊이 새겨볼 시간도 없이 흘러가는 것이 몹시 아쉽고 안타깝다.


조정욱 변호사 (법무법인 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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