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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 그 특별한 사정을 배려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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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영한 드라마에서 ‘오로라는 원래 지구 밖에 있는 자기장이 어쩌다 보니 북극으로 흘러들어온 아름다운 에러, 작동오류’라는 대사가 나온다. 실수나 낙오에 너그럽지 못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소소한 위로를 주었다. 


우리는 정형화된 세계에 익숙하다. 주거지는 대부분 집합주택이고 대다수 직장은 유사한 조직체계와 업무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다르다’는 느낌을 ‘틀리다’고 정의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다름과 틀림은 참 어려운 문제이다. 다수의 합의로 보편적 질서의 테두리가 마련된 경우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무심결에 받아들이는 고정관념이 위험한 것은 그것이 거짓이기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은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존재인데 사회가 규격화·체계화될수록 요구되는 역할은 단편적이고 획일적이며, 틀에 맞지 않는 구성원은 쉽게 소외되고 거부당한다. 그렇게 해서 제거되는 것이 비효율성뿐만 아니라 그 체제의 숨구멍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판결문에서 법리나 사실관계를 정리하면서 자주 언급되는 어구 중 하나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이다. 이는 엄격한 기준에서 제한적으로 참작된다. 웬만해서는 당사자가 감당해야 할 일이거나 단순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당사자의 사정을 누구의 눈높이에서 보는가 자문하면 주춤하게 된다. 이미 몸에 밴 고정관념에 따라 일반화된 경험과 기준이 당연히 옳다고 믿기에 누군가의 절실한 사정을 실은 그다지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특별한 사정이 생길 수 있음을 잘 안다. 그리고 곤란한 사정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게 먼저 찾아오기 마련이다. 차별과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만나는 소외된 이들의 특별한 사정을 편견의 잣대 없이 보듬는 관용과 배려가 결국 그 사회의 품격을 말해줄 것이다. 부디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조금 더 친절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부족함과 서투름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믿으며.


김윤종 재판연구관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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