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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법창

한 품위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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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 눈에 봐도 행색이 남루하고 잔뜩 주눅 들어 사무실을 찾아 오신 할아버지가 억울한 사정을 털어 놓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도착을 알리는 전광판이 안 보여 앞 청년에게 손을 잡고 비켜 달라고 이야기하던 중 폭행 가해자로 몰려 벌금 70만원의 형을 받았다고 합니다. 억울한 사정은 잘 알겠으나 필자가 적는 정식재판청구서도 그 비용이 만만치 않고 이미 할아버지의 진술이 폭행 인정의 진술을 한 것 같으며 제가 아무리 잘 써도 반대되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한 이미 난 약식명령을 뒤집기는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너무 억울해서 잠을 못 잔다고 하면서 꼭 써 주면 좋겠다 합니다. 그러면서 돈을 꺼내는데 신문지에 싸져 있던 돈 얼마를 꺼내면서 "가진 돈이 이것밖에 안되는데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하면서 손잡고 부탁을 합니다.

결국 써 드리기로 하고 며칠간 말미를 달라 했습니다. 폭행의 고의가 없었다는 점 또는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형법상 위법성조각사유가 된다는 점, 결정적인 증거 없이 피해자의 진술에만 의존하였다는 점, 가해자는 80세가 넘은 노인이며 피해자는 건강한 20대 청년임을 부각시켜 적었습니다. 며칠 후 완성된 청구서를 할아버지는 정성스럽게 읽습니다. 다 읽은 후 할아버지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면서 그동안 너무 억울해서 잠을 잘 수 없었는데 저의 청구서로 억울했던 감정이 사라지면서 판사님께 제출하면 비록 형이 확정된다 해도 덜 억울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자식들과도 인연을 끊고 혼자 사신 지가 오래되었고 지금은 폐지를 주워 근근히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평생 정직하게 살아오셔셔 단 한 차례도 경찰이나 법원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데 그동안 남들에게 대접 못 받고 살았지만 정직했던 삶이 경찰조사를 통해 부인당하자 본인을 힘들게 하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생각하였습니다. 남들은 폐지나 주우면서 사는 비루한 삶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평생 정직하게 살아오신 할아버지의 삶이야 말로 품위 있게 살아오신 삶을 살아 오신 것이며 부디 품위 있고 아름답게 산 할아버지의 삶이 오늘의 사건으로 부인당하지 않으며 제가 쓴 글이 진심으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오종규 법무사 (서울중앙회)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