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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생활

[나의 문화생활]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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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볼 수 있었다. 워낙 인기가 있는 작품인데다 특히 이번에 캐스팅된 배우들의 티켓파워가 엄청나서 티켓오픈 때마다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좌석을 보면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예매대기를 신청해서 몇 달 만에야 겨우 성에 차는 좌석을 구했다. 


원작의 심오한 이야기 제대로 담지 않고

무대도 좀 비어있는 듯 했지만


의사인 헨리 지킬이 인간의 선과 악을 분리하는 실험을 하다 욕망과 사악함의 화신, 에드워드 하이드로 변하게 되고, 한 사람의 두 인격인 지킬과 하이드가 서로 대립한다는 줄거리의 <지킬앤하이드>는 이제 이중인격 이야기의 대명사이다. 하지만 하이드는 배너 박사가 변한 헐크보다 훨씬 복잡한 인격이다. 원작인 소설에서 지킬은 원래 유혹에 잘 휩쓸리고 욕망을 주체 못하는 성격인데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나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자신의 이런 모습을 철저히 숨기며 살아온 사람이다. 하이드는 이런 지킬의 한 성격이고 억눌려진 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아이이며, 마치 이제야 눈을 뜬 장님처럼 삶에 대한 의지가 강렬해서 지킬이 통제할 수 없었던 강간범, 협박자, 살인마이다. 하지만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원작에서의 심오한 이야기를 제대로 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불친절하게도 사건들이 개연성 없이 진행된다. 무대도 정말 단순하다. 음침하고 어두운 톤의 조명에 무대장치나 소품도 기껏해야 초상화, 책상, 의자 정도가 전부이다. 그나마 약품병으로 가득 찬 실험실이 좀 덜 비어 보이는 무대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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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부실한 서사나 무대가 전혀 아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 너무나 아름다운 그 음악들과 배우들의 미친, 정말 미친 연기가 다 했기 때문에. 뮤지컬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This is the moment(지금 이순간)’나 ‘Someone like you’, ‘Once upon a dream’ 을 들으면 원래 아는 노래라고 할 것이다. 비교적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공연시간이 오히려 다른 공연에 비해 짧게 느껴질 정도로 바로바로 귀에 익숙하고 아름다운 넘버들이 이어진다. 무엇보다 이 뮤지컬의 백미는 지킬역 배우의 소름 돋는 연기.


지킬과 하이드를 완벽하게 오가는

주연 배우의 대단한 연기에 박수가…


밤 11시 56분, 지킬은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삼기로 결심한다. 11시 58분, 왼팔에 피빛 약물을 주사한다. -오른손으로- 실험일지를 기록하다 약효가 나타나자 바닥을 구르며 괴로워한다. 자정을 알리는 자명종 소리. 지킬은 하이드가 된다. 하이드는 침착하게 -지킬과 달리 왼손으로 - 실험일지에 “자정. 모든 게 정상”이라고 쓴다. 바로 이 장면을 보려고 그 고생을 하면서 예매를 시도한 것이지. 불과 몇 분전에 웅장하게 ‘지금 이 순간’을 불렀던 그 사람이 머리칼을 풀어 헤치고 소매를 걷어 올린 왼팔을 부자연스럽게 흔들면서 으르렁 거리는 짐승 소리와 함께 너무나 무서운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지킬로 워낙 유명한 이 배우는 2004년 내가 초짜 변호사시절 코엑스에서 한 초연을 봤을 때 이미 완벽한 연기라고 찬사를 받았는데 15년이 지난 지금에는 깊이가 훨씬 더해져 섬세한 손동작 하나까지도 지킬과 하이드를 완벽하게 오가는 정말 대단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지킬역에 캐스팅된 남배우들이 모두 한 연기, 한 노래하는 배우들이라 올캐스팅을 보고 싶은 욕심이 난다. 내로라하는 남배우들이 모두 지킬역을 거쳐 가는 걸 보면 우리나라의 뮤지컬 남배우들은 <지킬앤하이드>가 키워내고,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이 지킬들 덕에 제일 사랑받는 뮤지컬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 티켓팅을 하러 가볼까?


이윤정 교수 (강원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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