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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취재수첩] '여순사건' 재심결정문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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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지난 21일 전원합의체 결정을 통해 1948년 '여순사건' 당시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 받고 집행돼 사망한 피고인들에 대한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이번 사건 결정문을 보면 다수의견에 대한 반대의견들과 다시 이에 반박하는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이 개진되는 등 대법관들 사이에 뜨거운 공방과 토론이 벌어진 흔적이 엿보인다. 어떤 의견이 정답이라고 쉽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각각의 의견들이 나름의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그중에서도 눈길이 가는 대목이 있다. 바로 김재형·김선수·김상환 대법관의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 중 마지막 구절이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스러져간 영혼은 그 누가 달랠 수 있겠는가? 이 결정이 그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지, 얼마나 위로가 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그 청구의 당부를 엄정하게 판단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위로를 얻을 수도 있고 실망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우리가 해결할 수는 없다. 그래도 법에 호소하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법률에 충실한 판단을 하는 것이 그들이 기댄 국가,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사법부가 할 최소한의 도리이다."

기자의 눈에는 이 메시지는 국민뿐만 아니라 현재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태로 국민적 신뢰를 잃고 좌절감에 빠진 사법부 구성원들에게도 유효해 보인다. 판사는 양심과 법률에 따라 판단을 내린다. 그 판단에 때론 국민들은 만족하지 않을 수 있다. 판사가 신(神)이 아니니 모든 걸 해결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국민들은 법원을 향한다. 세 대법관들이 밝힌 것처럼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법률에 충실한 판단을 하는 판사의 재판을 받기 위해서다.

사법부가 헌정 사상 유례 없는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판사들의 사기가 바닥이다. 어느 판사는 "자괴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법원에 더 있을 이유가 없는 것 같다"고 말하는 판사도 많다. 그러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고 법률에 충실한 판단을 내려주길 기대하는 국민들이 있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고자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간다면 사법부 신뢰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사법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판사들 뿐이다. 판사들이 해야 할 것은 오로지 좋은 재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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