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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Judgement at Nur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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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형사재판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나치 전범의 처벌을 두고 영국의 처칠 등은 즉결 처형을 주장한 반면, 미국의 잭슨 대법관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기반을 둔 공정한 재판을 주장하였다. 그는 "재판에 회부한다는 것은 무죄로 풀려날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처벌만을 위해 고안된 법원은 존중받을 가치가 없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뉘른베르크 법정의 수석 검사직까지 직접 맡게 된 잭슨 대법관은 모두 진술(opening address)에서, "우리의 임무는 정의에 대한 요구와 복수를 원하는 외침을 구별하여야 하는 쉽지 않은 일이다. 역사는 후일 우리를 다시 재판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이 재판의 실제 원고(complaining party)는 문명(civilization)이며, 역사상 권력(power)이 이성(reason)에 경의를 표한 가장 의미 있는 사례"라고 역설하였다.

그 후 벌어진 재판들 중 법관들에 대한 사건이 흥미롭다. 명망 있는 법률가였지만 더 나쁜 자가 후임으로 올 것이 두려워 최소한의 협력만 했다는 사람(Schlegelberger)부터 인종청소정책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면서 법률의 무리한 적용을 감행했던 사람(Rothaug)까지 여러 전직 고위 법관들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들은 정권의 방침에 협력하여 재판의 결론을 바꾸었고, 이에 따르지 않는 다른 판사들을 비밀리에 감시하거나 인사조치로 위협하기도 하였으며, 형벌법규의 엄격한 해석 대신 국민의 ‘건전한 감정’이나 ‘상식’과 같은 자의적 기준에 따라 재판을 하였다. 재판부는 그들이 사법부의 독립을 무너뜨렸으며, 법원이 정의를 지켜줄 마지막 보루라는 피해자들의 간절한 희망을 배반하였다는 점에서 비난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시하였다.

잭슨 자신마저도 나중에 일부 피고인에 대해 무죄판결이 내려지자 강하게 불만을 표시하였고, 실제로는 피고인들의 증거제출권을 비롯한 방어권 보장 측면이 불충분하였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그 후 뉘른베르크 재판의 바탕을 이루는 기본 원칙은 계속 살아남아 국제형사재판소의 설립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국제형사재판소 역시 최근 여러 아프리카 국가의 정치 지도자를 대상으로 한 사건들(Gbagbo, Bemba, Kenyatta 등)에서 계속 무죄 취지의 결론을 내림으로써 많은 실망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한편, 힘없는 아프리카 사람들만 골라서 처벌하려 한다는 비판으로부터는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게 되었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단일한 이야기(single story)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그는 어릴 때 읽은 영미의 동화책에서 사람들이 화창한 날씨를 주제로 인사를 나누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날씨나 뜨거운 태양이 즐거운 대화 주제가 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단일한 이야기는 그 진실 여부에 관계 없이 고정관념(stereotype)을 형성함으로써 불완전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사법부에 주어진 임무는 이러한 단일한 이야기를 넘어 그 배후까지 들여다 봄으로써 사태의 완전성을 복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법원이 가혹한 현실을 핑계로 이를 소극적으로 회피하려 하거나 오히려 그러한 서사를 창조한 권력에 적극적으로 기대는 재판을 한다면, 이는 인류 문명이 뉘른베르크 이후 공들여 발전시켜 온 사법의 가치를 부정하는 시대착오적 태도임이 분명하다.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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