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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프리즘

정의없이 조정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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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가 양보하도록 어서 설득하세요.”


이게 무슨 말인가. 1심에서 전부 승소 판결을 받은 후 피고만 항소를 해 잡힌 조정이었다. 의뢰인인 원고는 피고에게 십수 년 간 많은 돈을 빌려줬고, 이자 몇 번밖에 받질 못해 여러 건의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그럼에도 조정위원은 “인척 간인데 어지간하면 합의하라”, “되는대로 깎아서라도 일단 받아라”고 한다. 내가 받아들이지 않자 재판장을 부른다. 이유인즉슨 “원고 대리인이 버티고 있으니 강제조정 결정을 하셔야 할 것 같다”는 것. 어리둥절한 표정의 재판장은 설명을 듣더니 “강제조정 할 사안이라 보기 어렵네요. 변론기일 잡겠습니다”라며 웃으며 금세 자리에서 일어난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는다는 조정에서의 신선한(?) 경험이 바로 이런 것일까. 여전히 당황스러운 기억이다. 이렇게 일단 답을 정해놓고 합리적인 근거도 없이 우격다짐으로 일방의 양보만 강요해서 무슨 조정이 되겠는가. 각종 조정제도 하에서 오래된 경험을 토대로 갈등을 봉합하는 조정위원들의 노고가 크다는 점은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한 당사자 간의 푸념을 번갈아 듣는 것도 어려운 일일 것이며 균형 잡힌 합의안을 제시하는 스트레스가 오죽하겠는가. 그렇지만 갑작스레 “변호사가 그런 식이어서야 되겠느냐”는 비난까지 듣고 나온 나로서는 조금 분하다. 판·검사 평가제도도 있는데 조정위원 평가제도는 왜 없는지 모를 일이라는 동료의 말이 떠오른다.

의뢰인에게는 뭘 어떻게 말해야 하는 걸까. 조정위원을 힐난하자니 엄연히 있는 제도만을 탓하기도 낯부끄러웠다. 노년의 남은 재산을 모두 잃은 부부에게 정의란 신속한 전부 승소 판결과 살뜰한 자금의 회수 아니겠는가. 여전히 기업을 운영하며 많은 재산을 소유한 피고를 상대로 받아야 할 돈을 깎아 조정을 한다는 건 어불성설일 뿐이다.

서둘러 다음 재판으로 향하는 뒷맛이 내내 썼다. 여전히 볼멘소리로 6개월의 연재를 마감하는 중요한 순간인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표없이 과세없다 했다던가, 정의없이 조정도 없다. 간단한 이치다.

 

 

장희진 변호사 (지음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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