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취재수첩

[취재수첩] 잠자는 공탁법 개정안

151130.jpg

정치권이 정쟁에 빠져 민생법안을 소홀히 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기가 찰 노릇이다. 새해가 밝은 지 두 달이 지났지만 국회 본회의는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필요한 입법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서 문제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본보가 25일자 1면으로 보도한 공탁법 개정 문제도 그렇다.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남편 A씨는 2017년 8월 법원에서 보낸 공탁금통지서를 받고 깜짝 놀랐다. 통지서에 A씨 부인의 주소와 주민등록번호 등이 모두 기재돼 있었기 때문이다. 법원이 가해자 측 변호인에게 사건기록을 복사해주면서 인적사항을 제대로 익명처리하지 않았는데, 이를 본 가해자 측이 기록에 나온 A씨 부인의 인적사항을 바탕으로 합의금을 공탁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법원 직원의 실수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미리 제도 개선이 이뤄졌더라면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형사사건에서 피해자와의 합의나 피해보상을 위한 공탁 여부는 양형에 반영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현행법상 공탁을 하려면 피공탁자의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 등을 기재해야 한다. 그런데 피공탁자가 성범죄 피해자 등인 경우 사건기록에서 개인정보가 모두 익명처리되기 때문에 가해자 측은 어려움을 겪는다. 물론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와 합의할 의사가 전혀 없는데도 인적사항을 알아내 합의를 종용하거나 협박하는 등 가해자에 의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이지만, 가해자가 자신의 범죄를 뉘우치고 피해자에게 보상하려고 해도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몰라 공탁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맹점을 고치기 위해 국회에는 두 건의 공탁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지 못하더라도 사건을 담당하는 법원과 사건번호 등의 정보를 활용해 가해자가 형사공탁을 할 수 있도록 특례를 마련하는 내용이다. 이미 2017년 5월과 10월에 각각 발의됐다. 국회 법사위 검토보고서는 두 법안에 대해 "피해자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피해 회복을 위하는 동시에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사죄를 표할 기회를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법사위는 지난해 9월 법안심사제1소위에서 단 한 차례 논의한 뒤 감감무소식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같은 큰 이슈도 중요하지만, 민생과 직결되는 손톱 밑 가시들을 곪기 전에 빼내는 것도 중요하다.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