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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삭발자(削髮者)의 변(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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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이 일어난 해인 1960년 서울대학교 학내 신문인 '大學新聞' 12월 12일자에 당시 법학과 3학년 학생이 '삭발자의 변'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였다. 학생회 사무실에서 대학동기 십여 명과 함께 머리를 빡빡 깎은 후 그 이유를 편지 형식으로 쓴 글이다. 


"(전략) 교회가 썩고 학원이 썩고 사회는 역한 냄새로 가득 찼어도 저는 때때로 마음만 안타까웠지 손 하나 놀려보질 못했습니다. 용기가 없었습니다. 흐름을 거슬러 오를 패기가 없었습니다. 결론이 이미 내려졌는데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 우리 백성의, 특히 지식인이란 사람들의 크나큰 병폐였습니다. 남들이 한다면 나도 하고 주위의 눈치만 살펴왔습니다.

오늘 제가 친구들의 까까머리를 보고 잠자던 영혼이 깨우침을 받아 저도 머리를 깎았다고 해서 즉시 간디 같은 사회개혁의 선구자가 되겠다는 그런 건방진 생각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만, 주위 사람이라는 것에, 무의미한 사회 인습에 얼마만큼 반발할 수 있는가 하는 용기를 시험해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중략) 남들이 욕하겠지요. 고독하겠지요. 그러나 소신대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가시밭길이라도 그 길을 가는 용기를 갖고 싶습니다. 졸업하면 취직하고 돈벌이하고 예쁜 아내 맞이하여 아들 딸 낳고 편안히 살다가 죽는다, 이런 평범한 생각은 우리 백성 모두가 잘살게 될 때 저도 하지요. 그러나 이 시대에 태어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은 이런 안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가난한 동안은 가난하게 살겠습니다.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마음을 배우고 싶습니다. 빛 노릇은 못해도 소금 노릇은 해야겠습니다. (후략)"

이 글을 쓴 사람은 이후 법관으로 그리고 인권변호사로 활동한 고(故) 김광일 변호사이고, 필자의 선친이다. 필자가 이번 법원 인사에서 법복을 벗겠다고 하자, 극구 말리시던 어머니께서 결국 마음을 내려놓으시고는 조그만 물건을 내어주셨다. 선친이 쓰시던 변호사 배지 2개였다. 삭발은 하지 못하더라도 항상 깨어서 용기 있게 소금과 같은 법조인의 삶을 살라는 뜻이리라.


김성우 前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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