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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사

[추모사] 법조사회 난기류 앞에서 당신의 혜안을 생각합니다

- 人樹 이택규 前 법률신문 발행인 10週忌를 맞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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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타계하신 지 어언 10년이 되는구려. 새삼 형과 어울려 보낸 60년 세월이 주마등같이 펼쳐집니다. 1948년 변시 2회 합격한 때 우리가 처음 만났지요. 그 후 형은 서울지검 부장검사일 때, 나는 서울지법 부장판사로 사법대학원 강사로서 법조 후배들의 실무를 지도하느라 심혈을 기울인 때도 있었지요.

 

형이 제주지검장과 초대 관세청장을 지내는 동안 나는 고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원을 떠나 7대 국회에 입성했을 때도 교분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형이 서울에서 변호사 개업했을 때 나도 정치를 접고 변호사 업무를 재개해 같은 재야 법조인이 된 셈이지요.

 

둘이 더 가까워 진 것은 내가 대한변협회장이 되면서 형에게 부협회장을 맡아 달라고 부탁한 때였습니다. 형은 동기생끼리 협회장과 부협회장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쾌락하여 나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보답으로 형이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에 출마했을 때 나는 힘껏 도와드렸고 당선되셨지요.

 

끈끈한 인연은 그 후에도 이어지더군요, 내가 한국법학원장일 때 법률신문사 경영 인수문제 자문을 받은 일이 있었지요. 나는 형이 평소에 법률신문에 관심 있음을 알고 있는 터라 형을 천거하였습니다. 여러 곡절 끝에 형이 인수하여 법조 전문지로 개편 성장시킨 사실을 법조계에서는 주지하고 있습니다.

 

실은 법조 소식을 체계적으로 수집, 정리하여 실무계에 제공하고 국민에게 알리는 것을 절실하게 공감하던 때였지요. 형의 혜안과 집념으로 회생 복구 하였기에 오늘의 법률신문이 있게 되었다고 평가합니다. 특히 형의 초심과 신념을 굳건히 계승, 비약하려고 후대 이영두 사장이 경영합리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일취월장하고 있는 모습이 믿음직합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요즘 우리 법조사회 좀 들여다봅시다. 몹시 혼란스럽고 불안합니다. ‘사법농단’, ‘재판거래’, ‘사법정의참살’ 등 흉흉한 신조어가 난무하면서 법조사회 뿐만 아니라 국민들까지도 혼돈스러워 합니다. 판사가 판사를 탄핵하려해서 갈등하지를 않나, 판결에 불만이면 판사와 그 가족들까지도 협박하는데 공공세력까지 가세하질 않나, 검경수사권 조정, 공수처 논의도 시끄럽고요. 사법부의 전 수장이 수갑 차고 법정에 서는 모습도 보게 되었네요. 가히 법조세계의 난(亂)기류라고나 할까요.

 

하기야 전에도 사법에 위협으로 느껴지는 일은 있었지요. 하지만 그때마다 모두 일체가 되어 이성적으로 대응하였고 주위에서 방풍역이 되어 주었지요. 그 시절 겪었던 몇 번의 사법파동이 있을 때 그랬습니다. 이제라도 법조사회 전체가 증오와 대립의 구도에서 벗어나서 이해와 포용의 세계로 회귀하는 길만이 해법이 될 것 같습니다.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옹의 언급 “사법부는 의연한 자세로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지극히 원론적이면서도 극명한 선언이 돋보이는구려.

 

법조세계의 목탁(木鐸)인 법률신문 선대 발행인이신 형은 어찌 보시는지요.

 

 

김두현 변호사 (前 대한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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