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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프리즘

가시밭길, 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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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군법원 소액사건의 원고 대리를 맡았다. 피고의 주장을 들으면서 끓어오르기 시작한 의뢰인은 재판 후 폭발했다. 왜 저 XX가 했던 거짓말을 적어 놓은 서류를 내가 들고 있냐는 것이다. 우리 주장은 빨간 종이에 다 있고, 파란 종이는 상대방이 쓴 것인데 나는 그걸 반박하기 위해서 갖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의뢰인은 납득하지 못했다. 그는 내 기록을 찢으려고 했고, 나는 필사적으로 지켰다. 의뢰인은 내가 상대방과 내통한 파렴치라며 진정을 냈고, 난 피혐의자로서 조사를 받았다. 또 한 번은, 난치병환자의 보험금사건을 맡았다. 열의를 가지고 변론을 했지만, 의뢰인은 오히려 나를 의심했다. 서면을 이렇게 많이 내는 저의가 무엇이냐고 따졌다. 할 말이 없었다. 억울한 마음을 누르고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패소였다. 의뢰인은 내가 거대 보험사에 매수되어 승부조작을 했다며 고소했고, 나는 경찰에 소환되었다. 미란다원칙을 고지받는 기분이 묘했고, 변호인 없이 혼자서 피의자신문을 받는 시간이 외로웠다. 


가난한 의뢰인들이 나에게 고마워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삶이 너무 고단해서 다른 누구에게 고마워할 만한 여유 자체가 없는 분들이었다. 의심하고 원망했고 화를 내고 협박했다. 때로는 사무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었고, 때로는 나도 경찰을 불렀다. 힘들었다. 많은 날을 울었고 많은 밤을 지샜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인생이다. 우연한 계기로, 천직인 줄만 알았던 변호사생활을 접고 글로벌IT기업에서 일하게 되었다. 청바지를 입고 전망 좋은 오피스로 출근해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 땅에는 낙원도 공짜도 없었다. 방에서 일하던 내가 트인 공간에서 여러 사람들과 나란히 책상에 앉아서 지내는 것은 알을 깨고 나오는 경험이었다. 용어조차 생소한 주제로 잇따르는 회의, 전화 한 통 받는 사이에 수북이 쌓이는 이메일로 숨 쉴 시간조차 부족했다. 덕분에 지나간 것의 의미를 알았다. 비합리와 잘 지내보고자 애썼던 그 날, 비즈니스의 합리성에 파묻혀서 질식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지독한 고독과 씨름했던 그 밤엔, 치열한 회사생활도 즐길 수 있는 에너지를 쌓았다.

‘법조프리즘’ 마지막 회를 위해 생의 한 가운데에서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어제를, 욕망과 탄원이 메아리치는 법정을,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나온 나의 청춘을 떠올려보았다. 걸을 땐 가시밭길인 줄 알았다. 돌아보니 모두 꽃길이었다.


박종명 변호사 ([유]딜리버리히어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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