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서초포럼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단상

150947.jpg

이제 ‘성인지 감수성’은 성희롱, 성폭력 관련 소송의 심리에서 법관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자질이 되었다. 치밀한 법적 논증을 업으로 하는 법관이 감수성까지 갖춰야 한다니 당혹스럽다는 반응도 없지 않다. 성인지 감수성은 ‘성인(잡)지’를 통해 키울 수 있다는 철지난 아재개그마저 등장한다.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은 논자마다, 국면마다 조금씩 달리 정의되는데, 대체로 성별 불균형 상황을 인식하고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내는 민감성으로 풀이된다. 이는 예술가에게 요구되는 '감성'이나 '감수성'과 다르며, 특수한 상황에 처한 타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인지능력'에 가깝다. 법관에게 있어 성인지 감수성은, 피해자가 성폭력 등 피해 당시 및 그 전후 상황에서 보이는 언동을 그가 처한 물리적, 사회적 성차별 상황의 맥락 하에, 또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상황의 힘(power of context)’을 고려하여 평가함으로써,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을 그르치지 아니하고 정확하게 사실인정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겠다.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남성과 여성은, 성에 관하여 한쪽은 적극적인 욕망의 주체로, 다른 한쪽은 무지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프레임되고, 언어와 행동체계도 이에 따라 형성된다. 이는 여성이 성폭력에 대해 즉시 반격하거나 피해를 입은 후 바로 문제제기를 하기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된다.

성희롱, 성폭력은 대부분 사회적 지위나 물리적 힘에서 대등하지 아니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이에 대한 저항이나 거부를 하려면, 해고 등 인사상 불이익 또는 학업상의 불이익을 감수하여야 한다. 어렵게 문제제기를 해도 주위의 오해, 상대방의 끈질긴 회유 등 2차 피해를 이겨내고 진술의 일관성을 지켜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사법부가 피해자의 말을 이해할 능력과 의사가 부족하여 지금껏 행위자에게 면죄부를 주어왔고 결국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회일반의 인식은 피해자의 입을 닫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희귀한 언어를 사용하는 외국인이라도 재판 당사자가 되면, 재판부는 2중, 3중의 통역을 구사해서라도 그의 말과 그가 처한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그렇다면 국민의 절반인 여성의 언어와 그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노력을 해왔는가 자문하게 된다.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해 당사자의 언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면, 그 본뜻을 해석해 줄 사람이나 자료를 적극적으로 찾아나서야 한다. 남녀를 불문하고 성인지 감수성이 뛰어나며 이를 함양하기 위해 애쓰는 법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양쪽 당사자의 상황과 언어를 모두 그 사회적 맥락 속에서 정확하게 이해하게 될 때에만, 이 둘을 나란히 놓고 증거가치를 판단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며, 그래야 공정한 재판이 실현될 것이다. 우리의 법정과 법관들에게 ‘성인지 감수성’이 충만하여 더 충실하고 설득력 있는 재판이 구현되기를 기원해본다.


이숙연 고법판사 (서울고등법원)

관련 법조인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