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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한 말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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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정식재판 청구사건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법정에 들어서자마자 느닷없이 악담과 저주의 말들을 쏟아 내는 중년의 여성 피고인을 만난 적이 있다. 마구잡이로 소리 지르던 피고인의 목소리와 표정이 잊히지 않는 것은 악의로 가득한 말들은 그 자체로 폭력이 된다는 것을 생생하게 체험했기 때문이다. 돌발 상황은 몇 분 내에 정리되었지만 스스로는 쉽게 진정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허공으로 흩어지는 몇 마디 말일 뿐인데, 그것도 맥락 없이 뱉어진 소리에 불과한데도 당황하고 놀란 마음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다 문득 그 마음이 얼마나 지옥이기에 험하고 거친 말들이 끝도 없이 쏟아지는 걸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화나고 속상했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말이란 세상을 떠돌다 우연히 내려앉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자란다.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싶은 실언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한번쯤 내 마음에 담겨 있던 생각임을 깨닫게 된다. 명절에 주고받는 덕담도 기쁘고 좋은 일들을 바라는 따듯한 소망에서 나온 것이듯.

옛말에 "내면의 수양이 부족한 자는 말이 번잡하고 마음에 주관이 없는 자는 말이 거칠다"고 한다. 마음이 단정해야 자신의 진심과 뜻을 간결하게 전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사람은 주변과 서로 물들고 물들이는 존재이다.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진심을 담은 말일 텐데 나는 타인의 말을 제대로 경청하는지 자신이 없다. 최근 읽은 책에서 '삶의 지혜는 종종 듣는 데서 비롯되고 삶의 후회는 대개 말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구절을 읽고 크게 공감했다.

법정에서 악담을 퍼붓던 피고인의 기행을 사무분담이 바뀐 후에도 들을 수 있었다. 미처 알지 못했으나 능히 짐작할 만 했던 그녀의 오랜 억울함과 분노를 조금이라도 다독일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악담에 서린 매서운 칼날이 마음을 베듯이 따듯한 말 한마디에 담긴 신비한 힘이 지친 마음을 조금은 위로할 수 있지 않았을까.


김윤종 재판연구관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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