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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직 대법원장 구속에 즈음하여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되었다. 6년의 대법원장 임기를 마치고 2017년 9월 퇴임한 지 489일 만이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가 시작된 때로부터 1년여 만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전직 대통령과 전전직 대통령, 그리고 전직 대법원장이 함께 수감되어 있는 나라가 되었다.

이번 수사를 적극 지지해 온 쪽에서는, 구속영장 발부가 사필귀정이고 사법적폐 청산의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수사를 비판해 온 쪽에서는, 혐의로 삼은 사항들이 정치적인 것이거나 사법행정권 재량범위 내의 것이거나 사소한 위법사항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한편 구속영장의 발부사유 및 경위에 초점을 맞추어, 김앤장 소속변호사와의 독대문건, 이규진 부장판사 업무수첩상의 大 표시, 법관인사 관련 법원행정처 보고서의 V표시 등이 결정적이었다는 디테일한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세세한 분석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검찰의 기소 후의 최종적인 결론이 어떻게 나든, 이 사태에 대한 수년 내지 수십년 후의 역사적 평가가 어떻게 나든 간에, 사법부 수장이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구속수감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법원이 받은 상처는 치명적이다. 현 대법원장은 출근길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참담하고 부끄럽다,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지만, 그 말로 법원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도 아니고, 국민이 받은 더 깊은 피해가 보상되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기소 및 공판진행에 따른 법정에서의 공방이 있을 터이고, 세세한 유무죄 판단은 사건을 담당하는 법관들의 몫이다. 그러나 이제 한국의 법조는, 특히 대법원은, 상처를 씻고 치유하는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 사실 전직 대법원장 구속이라는 정점을 찍기 전부터, 검찰수사가 한창이던 때부터 이 작업은 시작되었어야 한다. 우선 갈기갈기 찢긴 법원 내부부터 추슬러야 한다. 법관들의 소명의식은 유례없이 떨어져 있고, 법관들 내부의 이념적 대립도 심각하며, 이런 심중한 사태에 대해서 법원 내부에서는 의사소통이 단절되어 있다. 요즘 법관들은 식사 중에도 이런 사태에 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법관들 사이에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법원의 상처를 치유할 길은 없다. 또한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사건들 중 사법권 독립에 심각한 침해가 되는 사건, 가령 국회의원들이 임종헌 전 차장을 통해 죄명과 형량을 선처해 달라고 부탁한 일에 대해서는 과연 법관들이 침묵해도 되는 것인가?

국민들의 깊은 절망과 피해는 어떻게 복구해 나가야 하는 것인가? 앞으로 수십 년이 걸려도 과연 한국 법원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회복될 수 있을지조차 걱정스럽다. 현재로서 당장 법원 구성원이 할 수 있는 일은,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일이겠지만, 법원이 진정 충실한 재판을 할 수 있는 제도적 비전을 어떻게 제시할지는 법원 내부에서 활발하게 먼저 논의되어야 한다. 법관들의 사태 외면이 염려스럽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