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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Minority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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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CC가 다른 국제재판소들과 차별화되는 점 중의 하나는 수사판사(Investigating Judge)의 존재이다. 수사판사는 대륙법계에 기원을 둔 제도로서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 여러 국가에서 이미 폐지되었고, 모국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에서까지 폐지 논의가 계속되는 등 그 영향력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소설가 발자크(Honore de Balzac)가 프랑스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은 수사판사라고 언급한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수사판사 제도에 대해서는 너무 큰 권한이 판사에게 집중된다는 측면에 주로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독립성 있는 판사가 비밀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외부의 적절한 통제가 어려워 권한을 남용할 가능성이 있고, 판사가 실적을 위하여 유죄 입증에 치우침으로써 피의자의 권리를 소홀히 할 위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일제시대에 일본의 예심판사 제도가 조선형사령에 따라 도입되었으나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도구로 이용되었다는 비판을 받았고 결국 형사소송법 제정과 더불어 폐지되기에 이르지만 현재까지도 우리나라 형사소송에 이 제도의 영향이 일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ECCC에서 일하면서 그 원형에 좀 더 가까운 실무를 경험하게 되었다.

ECCC의 수사판사도 큰 권한을 갖고 있으나 그에 대한 다양한 견제장치가 마련되어 있는 점이 눈에 띄었다. 수사판사가 사전 조사를 거쳐 수사개시를 통보하면 그때부터 검사와 피의자는 당사자로서 기록 전체에 대한 열람은 물론 증거신청, 이의신청, 항고 등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피해자도 당사자가 될 수 있으므로 이해관계인들은 전체 수사진행과정을 쉽게 파악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수사에 장기간이 소요되는 것이 단점이지만 이처럼 당사자의 공방 및 항고심의 검토를 거쳐 유효성이 확인된 증거만 사건기록에 남게 되므로 공판에서 증거개시의무나 증거능력에 대한 다툼을 최소화할 수 있고,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도 적극적으로 수집할 수 있게 된다. 수사 비밀(confidentiality) 역시 체계적으로 관리된다.

우리 형사소송법 제정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 엄상섭은 신뢰도 측면에서 판사와 검사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표명한 바 있었고, 결국 우리나라는 검사에게 형사소송의 일방 당사자 역할뿐 아니라 예심판사를 대신하여 수사를 주재하면서 그 소송에 필요한 증거를 객관적으로 수집하는 임무를 동시에 맡도록 하였다.

프랑스 혁명 공포정치 시기의 혁명재판소 검사 푸르끼에 땡빌(Fouquier-Tinville)은 로베스피에르가 이끄는 공안위원회와 다수 국민의 지지에 힘입어, 재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재판장을 체포할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면서 단기간에 수많은 사람을 제대로 된 증거조사 없이 기소하고 처형하였다. 그에게 모든 사건을 24시간내에 처리할 것을 요구하였던 로베스피에르 자신도 후일 체포된 다음날 처형되었고, 이듬해 결국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된 푸르끼에 땡빌은, 오로지 국민공회가 정한 법률을 집행하였을 뿐 자신은 정치적 희생양이라고 강변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아니하였다.

수사주재자가 누구이든 자칫 합목적성에 기울기 쉬운 수사절차를 더 적정하고 공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추상적 직업윤리를 강조하는 데서 더 나아가 그로 하여금 반드시 반대편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도록 함으로써 재판에 준하는 객관성을 확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체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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