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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외교적 노력도 기울여야

일제 강제징용에 관한 손해배상 판결이 한일관계에 일파만파를 일으키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10월 30일 일제가 한국인들을 강제 동원하여 일본의 군수산업체인 일본제철 주식회사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하도록 한 것은 불법행위에 해당하는데, 이들을 고용한 일본제철도 불법행위 가담자로서 그 피해자들 또는 상속인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한 원심판결을 확정한 바 있다. 이 사건은 소멸시효 완성 여부, 한일청구권협정의 효력, 동일한 사건에 대한 일본법원 판결의 효력, 피고 신일철주금 주식회사가 일본제철의 승계인인지 여부 등 복잡한 법적, 외교적 쟁점을 포함하고 있는데, 대법원은 결국 원고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 판결에 대하여 외교경로를 통하여 강력히 항의하는 한편 최근 원고들이 신일철주금의 국내 재산에 대하여 강제집행 신청을 하자 한일관계 전반에 관하여 보복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이론적으로 보면 일본정부의 반발은 법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하도록 되어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인데, 일본이 법원의 판결에 대하여 외교적으로 문제 삼는다는 것은 우리나라 법원의 독립을 부정하는 전제에서나 가능한 것이어서 황당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법원도 국가를 떠나 존립할 수 없는 국가기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일본정부의 반발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국제조약인 한일청구권협정에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해결된 것을 확인한다고 명시되어 있는 터에 이 협정이 원고들의 위자료청구권에는 미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으니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 사건 판결은 일본법원의 판결에 대한 승인을 거절하고 있으나, 외국판결은 상호주의의 원칙 아래 그 내용에 대한 심사를 거치지 않고 승인해 주는 것이 국제적인 관례이다.

박근혜정부 시절 외교관들과 청와대는 대법원에서 원고들의 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이 나올 경우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을 예상하고 대법원장 등에게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있었던 법원행정처장과 청와대 비서실장 등의 회동이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취급되어 전직 대법원장에게까지 수사가 확대되고 있다.

대법원은 이미 2012년 원고들의 위자료청구권에 한일청구권협정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판시했고, 지난해 이를 최종 확정하였으니 그간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원고들을 위한 정의는 실현된 셈이다. 법원의 독립도 대외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판결로 인하여 한일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제는 우리 정부가 나서서 한일관계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과거의 우호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할 때가 아닌가 한다. 위자료를 한·일 정부가 공동 지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법원이 추구한 정의를 잣대로 외교를 하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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