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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기

[나의 여행기] 파리·루체른 여행 - 조태진 변호사

"영감 주는 에트르타 해변… 열차 타고 오른 天上의 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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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트르타는 괴도 루팡 시리즈 중 ‘기암성’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장소이다. 코끼리 바위 옆 해안 동굴에 괴도 루팡이 보물을 숨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돌쟁이 데리고 어디 멀리 가기는 힘들 것 같은데...” 요즘 우리 부부가 하는 소소한(?) 고민 중 하나는 입사 5년 만에 주어진 포상휴가를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근무일 기준 5일 간의 휴가이므로 앞뒤로 토·일요일을 붙이면 총 9일 간 멀리 해외여행을 다녀오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지만, 지난 12월 갓 돌을 지난 아들과 동행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회사 규정 상 2019년 3월까지 포상휴가를 쓰지 않으면 소멸된다는 점 때문에 아무래도 선택에 제약이 따르고 있다. 그러고 보면 결혼한 이듬해 첫 여름휴가 때 프랑스 파리 근교와 스위스 루체른을 다녀 온 것은 정말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그 이후에도 몇 차례 아내와 국내외 여행을 다닐 기회는 있었지만, 지금까지 그 이상의 장거리 여행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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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생미셸은 수도원으로 지어졌으나, 한 때 교도소로도 사용된 탓인지 낮에는 으스스한 느낌도 있다. 그러나 몽생미셸의 야경은 멀리서 볼수록 아름다운 백미로 손꼽힌다.

 여러 곳을 돌며 수박 겉핥기식의 구경을 하는 것보다는 몇몇 곳을 머물며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기 좋아하는 우리 부부의 특성에 맞춰 우리는 10박 12일 동안 프랑스 파리와 근교, 스위스 루체른을 여행하기로 했다. 항공편·숙박 예약, 여행 일정을 짜고 짐 싸는 것 등 일체의 여행 준비는 당시 회사에서 소처럼(?) 일하던 나를 대신해 전적으로 아내가 도맡아 진행했다. 극성수기인 여름휴가 기간 중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평소의 2배나 되는 돈을 주고 비행기 표를 구해야 했지만, 외국계 금융사에 근무하는 아내의 사원 복지 덕에 여행 기간 내내 좋은 호텔을 싸게 이용해 가계 출혈(?)을 최소화할 수 있었으므로 여러모로 아내 덕을 본 여행이었다.

 

파리를 조금만 벗어나도 끝이 보이지 않는 평야가…

거기서 좀 더 가면 평생 잊지 못할 해변의 절경이

자연과 가장 잘 어울린 몽생미셀의 모습도 몽환적


7월의 파리가 선선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선선하다 못해 비바람불고 추운 날씨 때문에 우리는 본의 아니게 패션의 본 고장에서 점퍼를 사 입는 것으로 여행 일정을 시작해야 했다. 이후에는 여느 파리 관광객들과 마찬가지로 유람선을 타고 세느강을 따라 주변의 유명 관광지를 구경하거나, 샹젤리제 거리를 거닐며 개선문,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베르사유 궁전을 관람하는 일정이 이어졌다. 그러나 프랑스 여행 중 정말 기억에 남고 또 추천하고 싶은 것은 에트르타 - 옹플뢰르 - 몽생미셸로 이어지는 파리 근교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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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그리던 스위스 산의 모습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구름 위의 산책, 바람에 살랑거리는 풀잎, 저 멀리 들리는 소떼의 방울소리. 청량한 바람까지. 리기산의 풍광은 사진으로 모두 담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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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넷째 날 새벽 4시 반, 우리는 졸리는 눈을 비비며 여행 오기 한 달 전부터 예약했던 한국인 가이드의 안내 따라 차량으로 파리 근교를 여행하게 되었다. 우선은 도회적이고 세련된 파리를 조금만 벗어나도 목가적인 분위기의 끝이 보이지 않는 평야가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지만, 거기서 조금 더 가면 한번 보면 평생토록 잊히지 않는다는 해변 에트르타가 있다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에트르타는 실제로 모파상, 모네 등 프랑스 예술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 곳으로 예술에 대하여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그 곳의 자연을 원고지에 옮기면 문학작품이 될 것 같고, 화폭에 담으면 명화가 될 것만 같았다. 노르망디의 주교 오베르가 대천사 미카엘의 계시를 받아 지은 예배당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몽생미셸 역시 그 곳의 자연과 가장 어울리는 모습으로, 낮에는 신성하고 특히 밤에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파리로 돌아가려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덕분에 그 날 우리는 거의 자정이 다 된 시간에야 파리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프랑스 자연이 주는 감흥에 도취해 쉬이 잠들 수 없었다. 프랑스 와인을 이야기할 때 ‘떼루아르(Terroir)’에 대한 언급이 빠지지 않는 것처럼 앞으로 프랑스 문화를 논할 때는 반드시 프랑스 자연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람선 타고 호수 지나 산악열차로 산정에 오르면

초원의 곳곳에서 들리는 소떼의 은은한 방울 소리 

여유롭게 모여 연주회 즐기는 주민 모습도 부러워


여행 일곱째 날과 여덟째 날. 우리는 떼제베(TGV)를 타고 스위스로 이동하였다. 루체른의 리기산은 비록 스위스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융프라우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곳이기는 하나, 유람선을 타고 루체른 호수를 지나 산악열차를 타고 산을 오르는 일정은 어릴 적 누구나 꿈꾸어 보았을 전형적인 스위스의 모습을 만끽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저 멀리 만년설 덮인 알프스를 바라보며, 푸른 초원 곳곳에서 들리는 자유로이 풀을 뜯는 소떼의 은은한 방울소리와 함께 산악열차에서 내려 쉬다 걷다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착해 있었다. 만약 실제 천국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풍광이 눈부시게 아름다워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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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산 아래 베기스라는 마을에 내려왔을 때는 마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연주회를 즐기고 있었다. 평일 오후 이 시간이면 나는 분명히 사무실이나 법정에서 입에 단내 나도록 일하고 있을 텐데 유유자적하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부러웠다. 물론 신(神)의 편애를 받으며 태어나고 자라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들의 여유로운 마음만큼은 배우고 싶었다.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경쟁적인 피로사회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맛있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입안에 저절로 침이 고이듯 프랑스 파리 근교와 스위스 루체른에서의 행복한 기억들을 추억하다 보니 가족들과 다시 한 번 가고 싶어진다. 물론 그러자면 아들이 긴 시간의 여행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클 때까지 제법 많은 시간이 흘러야겠지만, 둘이 아닌 셋이 가는 여행이기에 그 의미는 더욱 특별할 것이다. 그 날이 기다려진다.

 

 

조태진 변호사 (법무법인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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