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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기 강의계획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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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줬던 고향선배가 있다. 선배는 군대를 다녀온 뒤 음악에 대한 열정이 끓어올라, 마을에서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유일한 사람에게 가르침을 부탁했다. 선생님은 선배를 열심히 지도했다. 다만 선생님은 ‘바이엘(상)’ 단계에서는 시범을 보여주었지만, ‘바이엘(하)’단계에서는 선배 혼자 치도록 하고 말로만 지도했다. 선배는 급속히 실력이 늘어 ‘체르니’를 칠 단계에 이르렀는데 선생님은 이제 그만 하산하라고 했다. 청천벽력이었다. 선배가 선생님께 매달리며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실은 나는 바이엘(상)까지 밖에 칠 줄 모른다. 바이엘(하)까지는 듣고 지적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더는 도저히 못 하겠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것을 나보다 나은 사람을 상대로 가르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너는 모를거다.” 선배는 선생님의 은혜와 가르침을 깊이 새긴 채 독학했고, 음대에 입학했다.


건강을 위해 의사의 건강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의대에서는 병이 깊어진 뒤에 해결하는 방법을 배울 뿐 건강하게 살기 위한 방법을 배우지는 않는다. ‘죽은 의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책 제목이 말하듯, 의사의 평균수명은 일반인보다 낮다는 것이 통계로 밝혀졌다. 지적호기심이나 교양이 목적이라면 모르겠으나, TV로 의사의 건강강의를 볼 시간에 운동화 신고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것이 건강에 유익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편,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변호사의 강의도 늘어나고 있는데 가사·상속이 주된 주제이다. 송사도 없는 일반인이 업무와 무관하게 법률강의를 듣는 이유는 무엇일까. 건강강의와 마찬가지로 가족, 이웃들과 분쟁 없이 화목하게 지내기 위함일 것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 변호사는 기존 분쟁의 해결 외에 건강한 관계수립에 관한 훈련도 받은 전문가인가. 변호사인 사람은 일반인보다 분쟁에 덜 휘말리고 주위 사람들과 평화롭게 잘 지낼까.

실은 최근 주변의 권유로 생활법률 강사 대열에 뛰어들고자 준비를 했었다. 그러다가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 계속 커졌기에 계획을 수정하려고 한다. 말로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실제로 남는 것은 삶으로 가르친 것뿐이다. 신학기에는 강단에서 말하는 대신 옆의 사람의 말을 끊지 않고 들으며, 짜증이 날 때면 미소를 지어보리라. 가족과 이웃의 손을 잡고 동네 한 바퀴를 걸으며 습관처럼 말하리라.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박종명 변호사 (법무법인 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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