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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Bohemian Rhaps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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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재판관 취임선서를 하면서 낭독하였던 선서문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어느 정부로부터도 지시를 받지 않겠다(Shall not accept or seek instructions from any Government)”는 문구였다. 너무나 당연한 내용이었지만, 앞으로 내가 한국의 판사라는 사실로부터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국내에서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할 일이 있었는데, 전체 행사의 제목에 ‘사법 한류’가 포함되어 있었다. 강연을 시작하면서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나 영향력을 높이는 일은 국제재판관의 업무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을 먼저 언급할 수 밖에 없었다.

한편 필자가 속한 재판부가 고문(torture)에 의한 증거의 증거능력을 선별적,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변호인은 후속 사건에서, 한국의 수사기관이 잠을 재우지 않는 방법으로 피의자를 고문하는 사례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유엔총회 보고서를 관련 서면에 인용하는 방식으로 이 판결의 주심 재판관의 국적을 환기시켰다.

국제재판관이 모국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현실과 마찬가지로, 각국의 사법부 역시 국제법적 시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2건의 전원합의체 판결(일제 강제동원 손해배상, 양심적 병역거부)을 읽어보았다. 조약의 해석, 반인도적 불법행위, 유엔 자유권규약의 효력 등 국제재판의 단골 주제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국제재판소의 판결이나 국제기구의 결정까지 직접 인용되어 있는 점이 눈에 띄었다.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의 하나라고도 일컬어지는 미국 연방대법원에서는, 오로지 미국법 고유의 역사와 전통에 따라 헌법을 해석하여야 한다는 견해와 보편적 인권이나 조약의 준수의무 등 국제법 또는 비교법적인 시각을 좀 더 반영하여야 한다는 견해가 오랜 기간 맞서 오고 있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 이유 중에도 이와 일부 유사한 쟁점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더 이상 특수한 국내 사정이나 주권(Sovereignty) 등을 이유로 국제규범을 도외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각국의 사법부는 이러한 보편적 규범에 ‘법 해석’이라는 여과장치를 사용하여 국내에 무리 없이 적용될 수 있는 법체계를 만들어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페르시아계(Parsi) 인도인으로 아프리카에 있는 이슬람 계열의 잔지바르에서 태어난 프레디 머큐리의 정체성이 반영된 결과물로서, 'Galileo figaro magnifico'나 'Bismillah'와 같이 당시의 영국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가사를 포함하고 있는 노래 'Bohemian Rhapsody'의 발매를 완강히 거부한 음반제작자의 판단은 그 상황에서 보면 지극히 합리적인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노래는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사람들을 매혹시키면서 그 예술적 보편성과 지속성을 증명하고 있다.

특정한 시대와 장소의 맥락에서 어느 하나의 담론이 대중 사이에 압도적으로 우세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좀 더 확장된 시간적, 공간적 범위에서까지 그것이 타당할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당장의 판매 수익을 생각하여야 하는 음반제작자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법률의 해석 작업에서는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요소일 것이다.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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