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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初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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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기업 계열사에서 대규모 횡령사고가 발생하여 피해자인 회사를 자문한 일이 있었다. 차장급 직원이 몇 백억원을 장기간에 걸쳐 횡령한 사건이었다. 물론 중간에 고비는 있었다. 부하직원인 과장이 눈치를 채고 차장에게 횡령이니 고발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차장이 사실은 본인이 그룹 비자금 담당자라고 둘러대며 과장도 함께 비자금 관리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자, 과장은 출세길에 접어 들었다고 판단하고 적극 협조를 해서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범행이 더 쉬워졌다고 한다. 구치소에서 만난 과장은 "돈 한푼 챙긴 것이 없고 오로지 회장님과 그룹을 위해 일했다"고 하며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만약 그 과장이었으면 그 때 정말 다른 선택을 했을까'하고 스스로에게 묻는데 정말 자신이 없었다. 교도소 담장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았다.


그 무렵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모래시계라는 드라마 최종회에서 주인공인 검사는 오랜 친구이자 조직 폭력배인 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하며 그 이유를, "피고인은 살면서 여러 번 선택의 기로에 섰는데 그 때마다 좀 더 쉬운 길을 택하여 자신의 힘을 사용하거나 힘 있는 자에게 붙어 지름길을 걸었는데 이는 상식대로 살고자 하는 대다수 서민들의 희망을 꺾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상식대로 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서. 이 논고문은 당시 많은 화제를 몰고 오며 사람들 가슴에 정의감을 심어 주었다.

사실 살면서 쉬운 길이 보이고 조직의 힘 있는 사람들이 그 속에 발을 걸치고 있으면 힘 있는 자와 척을 지고 그 조직에서 어렵게 살거나 떠날 각오를 하지 않는 한 그와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쉬운 길을 선택할 때에는 조직의 힘 있는 자들이 다 하는 일인데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선조들은 어두운 방에 홀로 있어도 도의를 지켜야 한다며 신독(愼獨)이라는 말을 남겼지만, 요즘에는 홀로 있는 어두운 방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놀이를 통해 수없이 많이 금 밟으면 죽는다고 배우고 또 조심하지 않았던가.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김상곤 변호사 (법무법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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