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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12월의 카이로스(kai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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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도 또 이 삶을 살고 싶도록 나는 살고 있는가' - 니체 -


헬라어에는 시간을 뜻하는 말로 크로노스(kronos)와 카이로스(kairos)가 있다. 크로노스는 가만히 있어도 흘러가는 자연적인 시간으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객관적인 시간을 의미하는 반면에 카이로스는 나에게만 허락된 시간으로 나의 선택에 의해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주관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그런데 기회의 신이라고도 불리는 카이로스의 외모를 보면, 앞머리는 길고 무성한 곱슬머리인데 반해 뒷머리는 민머리이고, 왼손에는 저울을, 오른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으며, 발뒤꿈치와 등에는 날개가 달려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보았을 때 쉽게 붙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고, 뒷머리가 민머리인 이유는 한번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붙잡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며, 저울은 기회가 앞에 있을 때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 위함이고, 칼은 옳다고 판단되면 주저 없이 결단하기 위함이며,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함이라고 한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빈부, 성별, 종교, 인종을 떠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사람들은 각자 다른 카이로스의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누구나 동일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존재하지만 그 흘러가는 시간을 나만의 특별한 의미로 붙잡을 수 있는 기회는 오로지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후회하지 않을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어느덧 2018년도 12월 한 달만을 남겨 두고 있다. 올해도 역시 연초에 계획했던 것들 중 대부분은 시작도 해 보지 못한 채 작심삼일로 끝나 버렸다. 바빠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능력이 부족하다는 변명으로, 너무 늙어버렸다는 소심함으로 또 다시 후회로 가득 찬 12월을 맞고 있다. 그러나 우물쭈물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나만의 카이로스를 붙잡을 기회는 오직 지금뿐이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거대한 코끼리일지라도 냉장고에 넣는 방법은 간단하다.

“일단 문을 연다. 넣는다. 그리고 문을 닫는다.” 나만의 카이로스가 될 코끼리를 찾아내어 - 아무리 거대하고 낯설더라도 겁먹지 말고 - 2019년 1월 1일을 기다릴 것도 없이 오늘 바로 나만의 냉장고에 넣어 보자. 지금 이 순간 어떠한 후회도 남지 않도록.


이은혜 판사 (서울동부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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