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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프리즘

공익변호사의 면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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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처음 배운 곳은 법률구조 사무실이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 뒤 직접 사무실을 열었을 때나 선배 사무실에 들어온 지금이나 공익사건(법에는 법률구조, 소송구조, 국선변호인, 국선보조인 등의 용어가 나오고, 미드의 영향인지 ‘로펌’에서는 ‘프로보노’를 좋아하지만, 요즘 법조계에서 가장 흔히 쓰는 표현은 ‘공익사건’이므로 이를 따랐다)은 넘쳐났다. 사각지대의 취약계층을 많이 변호한 이유에 관하여, 주변에서는 내가 착한 마음씨를 가졌기 때문이라고들 했고, 나 스스로도 줄곧 그렇게 생각해왔다. 


공익사건이라고는 하지만 변호사에게 무료는 드물고, 상담이든 소송이든 보수가 있다. 민사소송법상 소송구조의 경우, 소송구조변호사는 패소한 경우에도 법원으로부터 보수를 받고, 승소한 경우에는 법원으로부터 받는 보수에 더하여 자신의 이름으로 패소한 상대방에게 대법원규칙이 정하는 보수액을 직접 추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같은 고급인력에게 턱없이 부족한 금액임은 틀림없다. 출장상담 기관에 가면 담당직원은 수당이 적어서 죄송하고 고맙다며 허리를 숙이고, 나는 수당이 입금될 계좌번호를 쓰면서도 ‘저 돈 쓰면서 상담하는 거예요’라고 생색 어린 농담을 했다. 사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대부분의 공익사건은 사선에 비해서 법리가 간단하고 정신적 압박감이 다르다. 내가 훌륭하다는 자기만족과 우월감도 준다. 해외 유학, 근무 경험이 전혀 없는 내가 지금처럼 외국어를 하게 된 것은 오직 가난한 외국인들 덕분이다.

근래 탈북소녀의 특별대리인으로 변론을 하게 되었는데 보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비공개 재판이라 방청객도 없었다. 돈도 안 받는데 알아줄 사람마저 안 보이니 허탈했다. 기록검토도 불성실하게 하고 서면도 늦게 냈지만 내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의 위대함과 억울함을 알아주지 못하는 소녀가 미웠다.

만화 ‘비트’에서 질주하던 오토바이에서 내린 여자는 남자에게 말한다. "착각하지 마. 오토바이 성능이 네 성능은 아니야." 높은 자리에 앉았다고 높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듯, 공익사건을 맡았다고 해서 내가 의인이 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려운 사람을 돕고 선한 일에 참여하고 싶어 하며 단지 나에게 그 기회가 많이 주어졌을 뿐이다. 멋진 역할은 이미 거저 받았으나 멋진 인격은 나와 너무 멀다는 게 답답하지만, 오늘도 나를 참아주는 의뢰인이 있고 내일은 나도 조금은 나아질 거란 소망이 있기에 감사하다.


박종명 변호사 (법무법인 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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