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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 길, 헛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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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부르게 희망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사법부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저마다 무거운 과제를 붙들고 불투명한 미래를 전망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운 시대이나 또 어느 때보다 단절되고 분열되고 갈등하는 시대라고도 한다. 편견과 증오로 가득 찬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우리는 일상에서도 수시로 대립하고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받는다. 타인과의 관계는 그 자체로 지옥이 되어 가는지도 모르겠다. 


빈민구호 공동체 ‘엠마우스’를 창시한 아베 피에르 신부(L'abbe Pierre, 1912~2007)는 프랑스인들이 꼽는 금세기 최고의 휴머니스트라고 한다. 샤르트르에게 타인이 지옥이라면 피에르 신부에게는 ‘타인 없는 나’의 존재가 지옥이다. 그는 자서전적인 에세이 '단순한 기쁨(Memoire d'un Croyant)'에서 타인과 공감하는 삶, 더불어 사는 기쁨을 말한다.

벌써 12월이다. 사법부 구성원으로 올 해만큼 고통스러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전 소중한 동료가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다. 씩씩하고 책임감이 강했던 그녀가 판사로서,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로서 쉼 없이 달려왔던 그 치열한 삶이 안타깝고 허망하여 한동안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피에르 신부는 ‘희망이란 삶에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이라고 한다. 절망적인 상황을 깨닫고 구원에 대한 절실함이 있을 때 비로소 희망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더불어 사는 기쁨은 우리가 서로에게 삶의 의미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소중한 사람, 지키고 싶은 가치만이 깊은 절망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닐는지.

사법부가 겪는 이 고통스러운 해부의 시간들이, 사랑하는 동료의 지난했던 여정이 헛되이 사라지고 쉽게 잊히지 않도록 맘에 새긴다. 깊어가는 겨울 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삶의 신비이고 일상의 온기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삶에 의미가 있다는 믿음, 그 순전한 희망은 논리도 수리도 아닌 사랑의 영역이므로.


김윤종 재판연구관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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