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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민주주의의 보루에서 훼손된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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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법관대표회의(법관회의)가 사법농단 의혹 연루 판사들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 검토 의견을 내자 일부 야당과 보수언론은 법관회의 때리기에 나섰다. 비판의 주 논거는 ‘삼권분립 훼손’과 ‘사법부 정치화’ 다. 가장 자주 들리는 소리는 판사들이 판결은 안 하고 정치를 한다는 얘기다. 지극히 적확한 지적이다. 모처럼 듣는 시원한 얘기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비난의 화살은 겨냥해야 할 과녁을 한참 빗나갔다. 그 화살의 좌표는 사법농단에 연루된 판사들이어야 한다. 정치권을 끌어들인 것은 누구인가. 법관회의 판사들인가 아니면 사법농단에 연루된 판사들인가. 그들은 공정한 재판으로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라는 국민의 명령은 뒤로 한 채 재판을 거래 대상으로 삼았다.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판결을 미끼로 정치권에 기대어 자신들의 목표를 실현하려 했다.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의 독립은 접어둔 채 입법과 행정을 감시하라 했더니 그들과 어울려 어떡하면 상고법원을 도입할 수 있을까를 도모했다. 법관회의가 오죽했으면 동료법관을 탄핵하라고 했을까. 탄핵을 여당과 입법부에 청탁하는 것은 삼권분립의 헌법적 가치에 반한다는 지적도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누구에게 해 줄 말인가. 사법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뒤흔든 세력이 과연 누구인가. 법치주의를 망각한 채, 누가 정치운동을 하고 떼거리로 사법을 무너뜨렸는가. 엘리트주의에 사로잡힌 일부 판사들 아니었던가.


법관회의의 대표성을 문제 삼은 판사들도 있다. 정당성이 부족하다며 법관회의를 탄핵하라는 모 부장판사의 지적은 어떠한가. 법관탄핵이 잘못이라면서 법관탄핵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양심과 용기로 치켜세우는 언론은 과연 언론의 임무를 다하고 있는가. 탄핵 찬성 53명이 법관 2900명의 양심을 대표할 수 있냐고도 묻는다. 대의민주주의 원리를 무시한 처사다. 법관회의에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이 주류라거나 여론의 눈치를 본 결정이라고 비하했다. 제대로 된 증거 하나 살펴보지도 않고 겨우 두세 시간의 논의 끝에 유죄평결을 내렸다고 폄훼했다. 동료 판사의 고뇌에 찬 결정을 이렇게 한 두 마디로 깎아 내릴 수 있는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고 결정하는 법관들이 모인 법관회의다. 특정 학회 출신이 조직을 장악하고 의사결정을 기획했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제인권법연구회는 법원의 공식적인 모임이고 그 회원 수가 전체 법관의 5분의 1쯤이라고 한다. 법관회의에 참석한 비율도 대략 그 정도다.

법관회의의 대표성과 정당성을 부정하는 그들에게 민주주의가 무엇이라고 배웠는지 묻고 싶다. 자신들이 속한 법원의 판사회의에서 선출한 법원별, 직급별 대표 아닌가. 대법원의 전국법관대표회의 규칙에 근거한 공식기구다. 그들이 내린 다수결에 의한 결정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것은 대의 민주주의 제도를 몰각한 처사다. 법관회의의 투표결과가 1표 차이로 갈렸다고 투표 전 자리를 뜬 판사가 자책감을 드러내는 것은 또 무엇인가. 자신의 성향을 코트넷에 공개하면서까지 투표결과가 뒤집어질 수도 있었음을 암시하는 무리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 다수결의 원칙에 이토록 무딘 것인가. 이런 왜곡과 억지가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에서 들려오니 신뢰회복은 요원할 것이라는 회의가 든다.


하태훈 교수 (고려대 로스쿨)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