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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공부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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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독일 주식회사법 책을 다 읽었다. 3월부터 수요일마다 지도교수님 연구실에 모여 두시간 반씩 강독을 한 것인데, 300쪽 남짓 되는 간략한 수험서이긴 해도 독일어 ABC를 배우기 시작한 지 2년 반 만에야 전공서적 한 권을 뗀 미련함을 이렇게 알린다. 


역사학자 토니 주트는 두 번의 이혼 끝에 찾아온 중년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그 어렵다는 체코어를 배웠다더니 (‘기억의 집’) 동·서유럽사를 아우르는 ‘포스트워’를 남긴 위대한 역사가가 되었다. 내 경우는 그저 박사논문을 쓴 직후의 일시적 허전함, 리트 가사를 아는 척하려는 허영심, 영어나 불어를 지렛대 삼아 쉽게 마스터 하리라는 오판, 어학공부의 루틴이 안겨줄 안도감에 홀려서 발을 들였다. 지도교수님은 법학연구자로서 당연한 기본기를 갖추도록 독려하시면서 (절대 강권은 아니고) 각종 문법·어휘 교재, 어학 사전, 법률용어 사전까지 잔뜩 안겨주셨다. 문법을 단기속성으로 익힌 다음, ‘모모’도 읽고, ‘타인의 삶’ 대본도 읽고, 독일식 ‘정의는 무엇인가’쯤 되는 리플렛도, 헬무트 슈미트-프리츠 스턴 교수의 대담집도 읽었다. 격변화는 낯설고, 문장 구조는 어색하고, 문장 끝에 튀어나오는 전철은 혼란스럽고, 수십번을 찾아도 동사의 뜻은 외워지지 않았다. 1년쯤 후에는 민법 전공자들의 강독에 끼여서 호되게 법학텍스트 읽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부사하나 전치사하나 흘리지 말 것, 관계사가 받는 단어를 정확하게 파악할 것, 사전을 찾아서 문맥이 통할 때 까지 뜻을 하나씩 대입시켜볼 것과 같은 당연한 룰을 지키지 않으면 매번 지적받고, 고치는데 늘 또 틀린다. 올해부터는 독일인 친구와 공부를 시작했는데 발음은 쭈뼛쭈뼛하고 듣는 귀는 마냥 트이질 않는다.

그런데 요 며칠 괴벨스 비서의 구술을 정리한 ‘어느 독일인의 삶’의 독일어판을 뒤적뒤적하려니 전에 없이 빨리 페이지가 넘어가는 거다. 외국어 공부는 꼭 내가 변심하기 직전에 개과천선을 다짐하는 애인마냥 질척거리고, 번번이 속는 나는 또 이번 주 예습을 시작한다.


김정연 교수 (인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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