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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인지 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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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법원에서 하급심이 무죄를 선고한 성범죄 사건을 '성 인지 감수성'이 부족하였다는 이유로 파기 환송하여, 한동안 성 인지 감수성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된 일이 있다. 성 인지 감수성은 성별 간의 차이로 인한 일상생활 속에서의 차별과 유·불리함 또는 불균형을 인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 들여지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 판결에 대한 상당수의 술 자리 의견은 남자로 살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니 성 인지 감수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긴 한 것 같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인지 감수성이 성별의 다름에만 필요한 것일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사회라는 틀 안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데, 완벽하게 수평적이고 평등한 관계는 사회 속에 존재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불평등한 관계는 삶에 있어 매우 위험한 요소가 되곤 한다. 따라서 관계의 다름을 인지하고 이로 인하여 약자에게 부당하거나 불이익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끊임 없이 관심을 가지고 인지하는 것은 사회 생활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우리 선조들도 일찌감치 이러한 관계 인지 감수성을 깨닫고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씀을 남기지 않으셨던가.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이라는 영화는 같은 사건을 전반부는 남자 주인공의 시각에서, 후반부는 여자 주인공의 시각에서 풀어내는데, 같은 사건이 서로의 입장에 따라 매우 다르게 기억되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드물게 흑백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주인공들의 기억의 대비가 흑백 영화의 명암만큼 확연하다. 이렇게 같은 사안도 각자의 처지에 따라 달리 해석되고 기억되는 것 때문에 더더욱 관계에 있어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들이 입대하기 전 친하게 지내던 필자의 후배들과 저녁 자리를 함께 하였는데, 후배 한 명이 아버지로부터 이거 많이 받았다고 하면서 필자의 아들에게 폭탄주를 건네서 술 못 먹는 아들 걱정에 화들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술 못 먹는 후배는 걱정을 안 하면서 아들만 걱정되는 것을 보면 필자의 관계 인지 감수성에도 많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언젠가는 모든 일들이 돌아오기 마련 아닌가.


김상곤 변호사 (법무법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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