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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애정남의 애정회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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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오랜만에 법원을 찾아 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판사와의 대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멀리 경남에서 온 계창 초등학교 학생들이었다. “평소에 판사에게 궁금했던 게 무언가요?”라는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한 아이가 번쩍 손을 들고 “판사가 하는 역할은 뭐에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음, 그래요. 판사가 하는 일은 사회의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재판을 하는 거랍니다." 설명이 쉽게 와 닿지 않은지 여기저기서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하는 수 없이 6년 전 의정부지법에서 견학프로그램을 도맡아 진행할 때 즐겨했던 레퍼토리를 써먹기로 했다. "여러분, 혹시 애정남이라고 아세요?" 철 지난 유행어인데도 고맙게 아이들이 기억해주며 "개콘!, 개콘!" 하고 외친다. "그래요, 개그콘서트 예전 인기 코너였던 애정남은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를 말하죠. 친구가 운동장에 두고 간 축구공으로 잠시 축구를 해도 되느냐?, 허락받지 않고 찍은 친구 사진을 SNS에 올려도 되느냐? 참 애매합니다잉?(이 목소리 연기가 그 날의 분위기 성패를 좌우한다), 애매할 때 누군가가 그 답을 정해서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애매할 때 명쾌한 해결책을 알려주는 애정남, 애정녀 같은 사람이 바로 판사랍니다." 말해놓고 보니 그렇다. 판사에겐 애매한 선택의 기로에서 그 중 하나를 선택할 의무가 있다. 그 선택에 대한 격려 내지 비판은 애정남의 몫일 수밖에 없다. 작년 이맘때 피고인이 재판 절차의 공정성을 문제 삼아 거듭된 기피 신청을 하는 바람에 추정돼 있던 장기미제사건을 단 한 차례 공판기일을 거치고서 판결 선고를 한 적이 있다. 그저 내가 한 것이라곤 실물화상기를 이용해 서증을 일일이 제시하면서 피고인에게 그 날의 상황을 자세히 물어보고 그 대답을 들은 것뿐이었는데, 최종 진술 시 피고인으로부터 “지금껏 이런 재판은 처음 받아 보았다. 진작에 이렇게 재판을 받았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눈물 섞인 소회를 듣기까지 하였다. 그 상황이 다소 무안하였지만 소송관계인의 발언과 입증의 기회를 주는 것에 인색해선 안 되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한 순간이었다. 나 같은 애정남이 국민으로부터 애정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정의로운 선택을 하는 데 있겠지만, 그 선택을 정의롭다고 평가받는 건 소송관계인에게 재판 절차의 참여를 충분히 보장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되지 않을까. 알면서도 늘 놓치는 애정남의 애정회복법이다. 



김대현 고법판사 (서울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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