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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생활

[나의 문화생활] 뮤지컬 ‘마틸다’를 보고

처음으로 한국어 공연… 아역배우들의 탄탄한 실력에 감탄
대사 많았지만 쫀득쫀득 '감칠맛'… 음악·무대 모두 감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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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틸다’를 한국어로 보다니! 우리나라 뮤지컬 아역배우들의 실력이 이렇게 대단하다니!! 뮤지컬 ‘마틸다’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으로 잘 알려져 있는 아동문학가 로알드 달의 동화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뮤지컬로는 이미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지만 어린이가 주인공인데다, 라임이 중요한 많은 대사 때문에 우리말로 된 공연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아시아에서도 처음으로, 무려 비영어권에서 처음으로 라이센스 공연을 한 것이다. 또랑또랑한 목소리의 마틸다는 왠만한 뮤지컬 주인공 이상으로 많은 대사와 노래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다른 어린 배우들도 모두 멋진 앙상블 무대를 보여주었다. 공연을 보기 전에 애들이 하는 가족 공연 수준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던 것이 정말 부끄럽고 미안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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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틸다’의 줄거리는 얼핏 보면 단순하다. 천재에 초능력자인 마틸다는 아동학대를 일삼는 부모 밑에서 크는 아이이고, 학교에 가서는 아동학대를 일삼는 악당 교장선생님을 만나는데, 천재성과 초능력을 이욯해 교장선생님을 혼내 주고 쫓아낸다. 아마도 사춘기에 접어든 큰애가 보고 왔다면 이렇게 줄거리를 요약했을 것이다. 그런데 눈높이를 낮추면 이 이야기가 그렇게 허황되고 유치찬란하기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마틸다네 학교의 트런치불 교장선생님은 남자 같은 장신의 체격이다. 별거 아닌 일에 아이를 머리카락을 잡고 빙글빌글 돌려 공중으로 던져버리는 사람이고, 걸핏하면 말썽을 부리는 아이는 초키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체벌방에 보내겠다고 위협하는 사람이다. 이런 설정이 어른의 눈으로 보면 비현실적인 선생님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아이의 키에서 아이의 눈으로 보면 자기를 혼내는 어른은 키가 지붕만큼이나 크게 보일 것이다. 어른들이 아이에게 주는 벌은 아이가 한 혼날 짓에 비해 항상 과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어른들이 아이를 위협할 때 예고하는 벌은 그게 가짜라는 걸 모르고 들으면 너무나 무서운 것이다. 나도 어렸을 때 망태할아버지가 잡으러 올 거라거나 자고 나면 입이 삐뚤어질 거라는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실로 무시무시한) 저주를 들어본 적이 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이다운 상상력으로 문제를 해결한 황당함을 웃고 즐기다 보면 아이의 눈높이에서 어른의 세계를 돌아보게 된다. 저 아이들의 눈에는 저렇게 보였겠구나....얼마나 절묘한 시각의 전환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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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훌륭한 이야기꾼의 원래 대단한 원작 이야기를 좇는 재미도 재미지만, 뮤지컬 ‘마틸다’의 무대는 소문대로 역시 멋졌다. 대사가 많은데 모두 쫀득쫀득한 맛이 넘쳐 하나라도 안 놓치고 듣기 위해서 시종일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어야 하는 노력은 좀 필요했지만, 알파벳으로 라임을 맞춘 school song’은 그런 수고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긴 그네를 왔다갔다 타면서 부르는 ‘when I grow up’은 음악도, 무대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기껏 어른이 되면 하겠다는 것이 콜라를 마신다거나 밤에 날 괴롭힌 무서운 괴물들을 무찌르겠다는 소박한 것이어서 그 순진함이 귀엽다. 어린 학생들이 다 같이 책상위를 오르내리며 힘차게 부르는‘revolting children’은 어린 시절에 감동적으로 봤던 영화‘죽은 시인의 사회’ 의 한 장면도 떠올랐다. 물론 훨씬 신나는 초딩버전이긴 하지만. 다른 공연에서는 맘을 설레게 할 정도로 멋진 남성미를 발산하던 배우가 우스꽝스럽게 치마를 입고, 참빗으로 빗은 듯 머리카락을 머리에 좍 붙여서 끌어 올려 묶은 머리를 한 트런치불 교장으로 분한 것도 색다른 재미였다. 이 정도면 이제 뮤지컬 보러 웨스트엔드나 브로드웨이에 갈 필요가 없겠다.


이윤정 교수 (강원대 로스쿨)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