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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말

[나의 주말] 기타 연주 즐기는 정원석 판사

사춘기에 기타 짝사랑… '뜸북새' 악보와 씨름하다 3일만에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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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아주던 딸아이가 잠이 들면, 서재에 있는 기타를 조용히 꺼내면서 필자의 주말은 시작된다.

어릴 적 ‘메탈리카’와 ‘너바나’를 좋아하지 않았더라도, 한번쯤 윤도현이나 로이킴같이 통기타를 매고 음유시인이 되어 보거나, 디즈니의 ‘코코’나 노르웨이 숲의 레이코 여사처럼 촛불을 켜고 누군가의 명복을 위하여 바흐의 푸가와 스페인 무곡을 우아하게 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기타는 가장 대중적이고 흔한 악기에 속하지만, 정작 들여다보면 배우기가 만만치 않다.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명료하게 소리내는 것이 피아노 건반이라면 3살 조카도 즉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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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의지가 충만한 어른이라도 기타는 자칫 몇 달이 걸릴 수 있다. 죄없는 손가락만 아파오고, 왼손과 오른손은 따로 놀며, 기타줄에서는 로망스가 아니라 기괴한 잡음이 새어나온다.

 

일렉기타에 입문 친구의 현란한 연주에 매료

기타학원에 배우러 갔지만 재능부족 확인만


내가 여기서 뭐하나 한심하기도 하고, 난이도와 스트레스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이쯤 되면 우리가 추구하는 ‘소확행’과도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취미는 그런 것이다. 진전이 없으면 흥이 나지 않는다. 

  

어느새 기타는 주인에게 버림받아 애물단지나 녹이 슨 장식품이 되어버린다.

나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춘기가 헤비메탈의 전성기와 대략 일치한 탓에, 주변에는 진지하게 일렉기타의 세계에 입문한 친구들이 제법 있었다. 그들의 긴머리가 아닌 현란한 속주가 부러웠던 나는 용산의 어느 기타학원을 찾아갔다.

딴에는 ‘오지오스본’이나 ‘본조비’의 리프부터 입문할 줄 알았는데, 댄디한 락커 차림의 학원 선생님은 내 기대와 달리‘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로 시작하는 ‘오빠생각’ 악보를 내밀었다. 뜸북새의 아득한 고비를 넘지 못하고, 나는 3일만에 기타를 포기했다. 재능도 부족하고, 의지도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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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한 세월이 흘러 법원에 들어와서도, 태산과 같은 기록과 엄숙한 법복 앞에서 기타에 대한 짝사랑은 자연스레 잊혀졌다. 그러다가 어느 법원의 송년 행사에서 나는 우연히 밴드의 베이스기타를 맡게 되었다.

급조된 동료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조악한 실력이었지만, 공연의 흥분이나 합주의 즐거움을 만끽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이참에 기타에 대한 노스텔지아가 모락모락 피어나는가 싶었으나, 경향교류 인사로 지방에 내려가면서 주말이면 낚시대를 들고 다니는 날이 많아졌다. 


판사 되고 법원 송년행사서 베이스 기타 연주

조악한 실력에도 공연의 흥분과 즐거움 '만끽'


그러던 어느날 고속버스에서 음악을 듣다가 기타가 불현듯 다시 배우고 싶어졌다. 기껏 장만하고 그만두면 후회할 테니, 처제가 잠시 배우다가 휴면상태로 둔 통기타로 시작하기로 했다.

현악기인 기타는 처음에는 치는 줄이 풍성하게 울리도록 하는 것이 당면 과제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치지 않는 줄에서 노이즈가 나지 않도록 깔끔하게 뮤트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나만 그런가?).

인천의 후배가 소개한 프로 연주자를 찾아가 큰절을 올리고 기초를 탄탄히 배웠다. 인천지방법원에서도 최광필, 임재환 계장님을 비롯하여 기타를 사랑하는 분들과 만나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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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우렁찬 구령이나 딸아이가 배우는 악기와 호흡을 맞추거나, 유튜브 데뷔를 꿈꾸는 방구석 기타리스트도 충분히 재미있겠지만, 주위에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밴드나 앙상블을 이루어 합주하는 이벤트도 큰 기쁨이 될 수 있다.

물론 반복된 연습을 통하여 어떤 곡을 마스터하는 것과, 듣는 사람에게 그 곡의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역량에 큰 차이가 있다. 다만, 늘 부족한 나의 손놀림을 탁월한 연주자와 비교하거나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딱히 정신건강에 좋지 못하다.

 

인천지법 근무하며 프로에 배워 기초 탄탄히

최근 법원 동호회에서 합주하는 재미에 '흠뻑' 


과거의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개선되었다면, 그것으로 일정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어쩌면 악기는 둘째 치고 그만큼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음악을 자주 접하게 되는 계기가 궁극의 목적인지도 모르겠다.

현재는 법원의 동호회에서 기타 실력을 쌓아 자체 공연을 준비하거나, 재능 있는 지인들을 객원 보컬이나 합주 팀원으로 섭외하여 미숙한 연주력을 보완하고 있다. 아무래도 내년 정기인사에는 정든 인천과 동호회를 아쉽게 떠날 확률이 높지만, 그동안 서울에서 드럼을 연마한 친구와 합주를 재개할 기회도 생길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혁오밴드’의 신곡을 떼고, 보스턴이라는 그룹의 ‘모어 댄 어 필링’을 마무리 중이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는 보스턴 레드삭스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하였다.


정원석 판사(44·사법연수원 37기·인천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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