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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채식주의자' (한강 著)

보편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 기본권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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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채식주의자'는 평범했던 여성이 끔찍한 꿈을 계기로 채식을 시작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다. 주인공 영혜의 남편, 형부, 언니의 관점에서 쓴 각 단편을 모아 장편으로 엮었다.


영혜의 채식은 사회적 통념에 대한 거침없는 저항이다. 어느 날 이후로 영혜는 고기를 먹지 않고, 고기냄새가 나는 남편과의 잠자리를 거부한다. 더 이상 브래지어도 하지 않는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신체와 정신의 주권자인 개인은 그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밀은 인간의 행동을 '순수하게 개인에만 관련된 행동'과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으로 나누고, 형벌과 도덕을 포함한 '사회적 강제'는 오직 후자의 행동에 대하여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썼다.

그런데 '순수하게 개인에만 관련된 행동'과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은 선명히 구분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후자를 넓게 해석할수록 개인의 자유가 설 자리는 좁아지게 된다. 타인의 행동을 후자로 포섭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군인 출신인 영혜의 아버지는 고기를 먹지 않으려는 영혜의 뺨을 때리고, 영혜의 남동생에게 영혜의 두 팔을 잡게 하고선 그녀의 입에 탕수육을 억지로 짓이긴다. 영혜의 어머니는 딸에게 "네가 고기를 안 먹으면, 세상 사람들이 널 죄다 잡아먹는 거다"라고 말한다. 영혜에 대한 영혜 부모의 행동은 밀이 말한 사회적 강제다. 영혜의 채식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일까?

사법은 인권 수호의 최후의 보루라지만, 법은 보편성의 편에 서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증명책임은 불명확한 상황에서 보다 보편적인 쪽을 정해둔 것이다. 과거를 다루기에 늘 사실이 부족한 법정에서 패소의 위험을 지는 건 덜 보편적인 쪽이다. 그래서 통념에 대한 대항은 대개 증명책임의 장벽을 넘지 못하는 모양이다. 대립하는 이해 사이에서 판단을 회피할 수 없는 사법의 숙명을 생각하면, 보편과 객관의 편에 서는 법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증명책임의 장벽이 높다고 하여, 법조인 역시 그 뒤에 숨어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객관과 보편이 견고할수록 그 뒤편의 다름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실체적 진실에 대한 탐구의지를 놓지 않는 것이야말로 바람직한 율사의 태도가 아닐까.

남과 다를 수 있는 자유, 보편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 권리야말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기초다. 한 사람의 법조인으로서, 생생히 살아있는 현실을 보편과 통념이라는 법의 테두리로 간단히 재단할 수 있다는 생각만은 경계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황귀빈 변호사 (법무법인(유) 영진)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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