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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징용판결을 계기로 상고제도를 다시 생각한다

지난 10월 30일 일제 강제징용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재상고심 판결이 전원합의체에서 선고됐다. 이 판결을 두고, 헌법정신과 인도주의에 입각한 것으로서 역사에 길이 남을 판결이라고 지지하는 견해가 있는 반면, 청구권협정 당시의 사료와 수십년간 한국정부의 공식입장을 부정하고 국제법과 국가 간 합의를 무시한 것이어서 향후 국제관계에서 한국에 큰 부담을 초래할 것이라고 염려하는 견해도 있다.

어느 견해가 타당한지에 대하여 의견을 보탤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 사건이 소제기 시부터 이번 최종확정판결까지 흘러온 경위를 볼 때 새삼 주목되는 점은, 우리 상고심 제도의 문제점이다. 애초 이 사건은, 2005년 징용피해자인 원고들의 배상청구의 소제기로 시작된 후 제1·2심에서는 종전의 한국정부 입장에 터잡아 청구를 기각하였는데, 2012년 대법원 소부판결로 원심을 파기환송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지난 1년간, 혼란의 쟁점으로 그리고 재판거래 의혹의 중심으로 만든 것은 제1차 대법원 판결의 무신경함이라고 생각된다.

1차 대법원 판결의 결론은 종전 한국정부의 입장과 다른 것이었다. 주지하듯이, 한국은 애초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조약당사국으로 참여하지 못하였고 뒤늦게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배상 및 보상의 합의를 했다. 그 후 정부의 입장은 대체로, 개인이 별도로 배상청구를 함에 대하여 회의적인 것이었다. 과거의 보수정권에서뿐만 아니라, 2005년에도 우리 정부는 “강제징용 보상이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본건 원고 외 다른 징용피해자들의 소제기도 2005년 이후 2012년 판결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2012년에 판결할 당시 대법원은, 본건을 당연히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과연 청구권협정에 징용피해자들의 배상이 포함되었다고만 할 것인지, 징용피해자와 위안부 피해자와의 차이는 무엇인지, 반인도적 불법행위라는 개념이 존재하는지, 그 개념과 반인도적 범죄와의 차이는 무엇인지, 사법부의 판결에 따라 한국의 외교가 향후 어떤 영향을 받는지 등에 대한 심층적인 검토를 했어야 했다.

1차 대법원 판결은 이런 작업을 전혀 하지 않은 채로 너무 쉽게 판결을 내려 버렸다. 당시 판결문 중 청구권협정과의 갈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관한 실질적 판단은 단 1면에 불과하다. 뒤늦게 중요사건임을 인식한 탓에 제2차 대법원 판결은 지지부진 늦어졌고, 그 사이에 재판거래의 집중수사 대상이 되었으며, 우리사회에 대법원 불신과 사회갈등을 초래한 것이다.

이는 중요사건을 제대로 구별해 내지 못하는 현재 대법원 상고심 시스템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법원이 1년에 수만건의 사건을 취급하느라고 중요사건에서 해야 할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도 상고제도 개선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다고 보인다. 최근 법원행정처장도 국회 보고에서 상고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또한 최근에 임명된 대법관 중 다수는 상고허가제를 통해 상고심을 개선해야 한다고 청문회 과정에서 밝혔다. 상고제도 개선에 좀 더 자원과 노력을 쏟기를 요청한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