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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별 있는 관찰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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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하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진실은 일부분에 불과하니 일말의 진실로 사건을 속단해서 안 된다." 존경하는 법조 선배님이 늘 강조하셨던 말씀이다. 마치 재판부가 사건을 판단하는 주체 같지만 실제로는 재판하는 모든 과정이 그 사건을 가장 잘 아는 당사자들로부터 평가받는 순간이라는 말씀이었다. 


초임 때 들은 말씀을 지금도 명심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의미가 다르게 읽힌다. 처음에는 당사자들이 하는 수많은 주장 중에 허구와 실제가 무엇인지를 가려내고자 애썼고, 주장하는 모든 내용을 의심하고 재고하였던 듯하다. 그러다 문득 '나는 당사자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듣고 있는가' 되묻게 되었다.

사건은 기록으로 접하는 것일 때에도 살아있다. 매 사건마다 당사자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저마다의 서사가 있고, 그 고유한 여정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면 사건을 제대로 파악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경우에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확립된 법리나 전형적인 사실관계에 사건을 끼어 맞추는 데 급급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미국의 저명한 법철학자인 마사 누스바움(Martha C. Nussbaum)은 저서 '시적 정의(Poetic Justice)'에서 재판관은 분별 있는 관찰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당사자를 ‘정체불명의 무분별한 대중의 한 사람’이 아닌 ‘존엄성과 개별성을 부여받은 그 자체가 목적으로서의 인간’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적담론에서 합리적 논증에는 스토리텔링과 문학적 상상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평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무관심하거나 무감각해지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나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익숙한 습관을 내려놓고, 그 사람의 진짜 이야기 속으로 기꺼이 들어갈 채비를 갖추었을 때, 자기 생에 놓인 역경과 고군분투해 온 그들의 여정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졌을 때 시작된다.

개개의 사건들이 여전히 뭉뚱그려 전형적으로만 보인다면, 내가 아직도 충분히 다가가서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은 까닭일 것이다. 모든 타인의 삶은 경이롭고, 진실한 이야기는 힘이 있으며 반드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시각과 관점을 고집하지 않고 타인의 이야기를 순전한 마음으로 마주할 수만 있다면.


김윤종 재판연구관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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