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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진심을 전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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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말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무슨 말을 들었느냐가 중요하다."

- 피터 드러커 -


# 70세 남짓의 할머니가 피고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로 법정에 출석하였다. 공사대금 청구사건이었는데, 공사 범위부터 공사대금 지급내역, 하자 부분까지 쟁점도 많고, 제출할 입증자료도 많은 사건이었다. 이에 재판장은 첫 변론기일에 혼자 출석해 별다른 주장도 하지 못하는 피고 대표이사에게 이 사건 공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실무 담당자를 소송대리인으로 신청하여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설명하고 소송대리인 신청절차에 관한 자세한 안내까지 한 후 변론기일을 마무리하였다. 그런데 얼마 후 예상치 못한 준비서면을 받게 되었다. 피고 대표이사로서 충분히 소송수행을 할 수 있는데도 재판장이 나이가 많다고 무시하면서 실무 담당자를 대신 내보내라고 모욕적인 발언을 하였다는 것이 주된 취지였다.

# 90세를 훌쩍 넘긴 임대인이 차임을 연체한 임차인을 상대로 명도소송을 제기하여 1심에서 전부 승소한 후, 항소심에서 조정기일에 출석하게 되었다. 가족들조차 연로한 원고에게 재판을 계속 하느니 항소심에서 적당히 조정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임차인과 감정의 골이 깊었던 원고는 한 푼도 양보할 수 없다며 조정기일에 홀로 출석한 터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원고는 연체 차임을 대폭 감액해 주고 명도기일도 충분히 허여한 내용으로 임의조정을 한 후 귀가하였다. 재판장이 교직에서 은퇴한 자신을 어떻게 알아보고는 꼬박 꼬박 ‘선생님’이라고 불렀다는 것이 조정을 하게 된 이유의 전부였다. 40대 초반에 불과한 재판장이 35년 전 자신의 고등학교 제자인 것이 분명하다면서.

진심은 결국 통하기 마련이라고들 하지만, 재판에서와 같이 낯선 당사자와 한정된 시간 동안 법적 분쟁을 해결해야 하는 예민한 상황에서 재판장으로서 진심을 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재판을 진행하다보면 아무리 진심을 다하여 노력해도 가끔은 나의 진심이 왜곡되기도 하고, 애초에 나의 진심어린 노력이 사실은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그릇된 것이었음을 깨닫게도 된다. 매주 법정에서 마주해야 하는 낯선 당사자들과의 소통이 힘들고 지치고, 한번 노력한다고 확 티가 나는 것도 아니지만, 어느 작가의 말처럼 매일매일 바닥의 흠을 닦는 마음으로 서로의 낯선 간격을 지우고 덮고 채워보리라.


이은혜 판사 (서울동부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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