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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교각살우(矯角殺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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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은 이미 끝났다. 여론재판 말이다. 법정이 열리기도 전에 답이 정해졌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한 시민이 백만 명을 넘어서고 언론이 동조하는 마당에 수사하는 경찰은 물론, 앞으로 검찰과 재판부는 PC방 살인사건에서 심신미약이란 말도 꺼내지 못할 것이다.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당연히 심심미약이 인정되지 않을 사건이다. 치료감호소에서 정신감정을 받을 것이지만 전문가의 감정이 결정적인 것도 아니다. 피의자야 감형을 받기 위해서 우울증이나 조현병을 주장하겠지만 평소 때가 아니라 살인 범행 당시에 피의자가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있었느냐가 관건이다. 정신병이 있다고 1년 365일 24시간 항상 이상하지 않다. 피해자와 언쟁하면서 죽이겠다고 위협한 상황이나 칼을 가져온 과정 등을 보면 아무리 우울증 약을 수년간 복용했다고 하더라도 심신미약을 인정받을 수 없는 사건인데, 자라(조두순 사건, 강남역 살인사건)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PC방 살인범) 보고 놀란 격이다. 미리 심신미약 감형이 얼씬도 못하도록 채비하려는 마음이 100만 명을 넘어선 것이다.


국회에는 이참에 형법에서 심신미약 감경규정을 삭제하자거나, 성범죄 외 다른 범죄에도 확대하여 주취감경을 적용하지 말자는 개정안이 여러 건 제출된 상태다. 아동성범죄로 촉발된 국민적 증오에 부응하여 자유형의 상한이 15년에서 30년으로, 가중처벌 상한이 25년에서 50년으로 상향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단박에 갑절로 뛰어 어마어마한 형벌인플레이션이다. 형법에 거는 기대가 너무 커 과부화상태다. 그러는 사이 책임원칙은 위기에 빠졌다. 이제 심신미약 감형규정까지 폐지하면 법치국가 형법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검찰과 사법부에 심신미약 판단기준을 세우고 구체화 하라는 주장은 할 수 있지만 형법의 책임원칙을 건드리는 심신미약 규정 폐지는 빈대잡자고 초가산간 태우는 격이다. 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 죽이는 우를 범하는 꼴이다. 물론 책임원칙이 금과옥조이고 훼손해서는 안 될 절대 원칙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당장 폐기해야 할, 시대에 뒤떨어진 원칙은 아니다. 책임원칙이 무너지면 결과책임의 회귀를 두려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망한 결과가 발생했다면 고의든 과실이든 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라는 주장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음주운전치사죄를 살인죄와 동일하게 처벌하자는 주장이 바로 이런 위험을 드러낸 예다.

“나는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짐승을 죽였습니다.” 1991년 1월 30일 많은 번민과 주저 끝에 자신의 인생을 망친 성폭력 가해자를 응징한 김부남 씨가 법정에서 남긴 말이다. 이 사건으로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어 지금의 성폭력관련 법률이 제정되고 성폭력 상담기관이 설치되는 성과를 얻었다. 범행 당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및 정신분열증적 증세가 발작하여 저지른 살인이므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라고 보고 심신미약 감형 규정을 적용하여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과 치료감호를 선고받았다. 책임원칙이 바로 이런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몇 개의 사건만 보면 대부분 심신미약 감형을 받은 것처럼 와 닿지만 많은 사건은 그렇지 않다. 심신미약 감형규정이 분풀이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될 이유다.


하태훈 교수 (고려대 로스쿨)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