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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는 2006년 설립 이후 2015년 말까지 10년 동안 미화 약 2억 6300만 달러의 예산을 사용하였고, 이 예산은 매년 30여개 국가의 자발적 기부에 의하여 조달되어 왔다. 그러나 재판소의 운영이 장기화되자 일부 국가들은 재판의 저효율, 저성과에 노골적인 실망의 뜻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재판관 부임 초기 재판부 운영상황에 관하여 월말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토대로 분기마다 유엔 본부에 상세한 향후 사건처리계획 및 목표 일정을 보고하는 행정적 업무를 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서 다소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자신들이 기부하는 돈의 쓰임새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얻고 그 타당성을 검토하려는 해당 국가들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처럼 성과와 효율을 기준으로 사법을 평가하려는 시도는 ECCC에 특유한 것이 아니다. 현재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당사국 총회의 요청에 따라 데이터에 기반한 재판소의 성과지표(performance indicators)를 만들어 운용하면서 그에 관한 보고서를 주기적으로 공개하고 있고, 과거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에서는 재판 지연과 과다 비용지출에 관한 비판에 대응하여 공판준비절차의 도입, 서면 대체진술의 허용 등과 같은 소송법규의 개정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각 국의 사법부 또한 예외가 아니다. 유럽평의회(The Council of Europe) 산하 ‘효율적 사법을 위한 유럽위원회(CEPEJ)’에서는 회원국의 데이터를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사법의 ‘효율성과 품질(quality)’에 관한 정기보고서를 내고 있고, 미국 국립 주법원센터(The National Center for State Courts)에서는 ‘CourTools’ 라는 성과측정 도구를 개발하여 각급 법원에 제공하고 있으며, 영국 Woolf 판사의 1999년 소송절차개선안 역시 핵심 해결과제로서 소송비용과 절차 지연에 집중한 바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이 사법에 대하여 비용 대비 효과를 따지거나(Results Based Budgeting), 핵심성과지표(Key Performance Indicators)를 설정하는 것과 같이 경영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방식은 자칫하면 사법의 독립이나 공정성, 당사자의 권리 보장 등과 같은 본질적 사법 가치에 대한 제약으로 작용할 위험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2013년 3월 독일의 사법성과평가 시스템이 주로 양적 측면에 의존한 결과, 사건을 빨리 처리하는 데 인센티브를 부여함으로써 재판의 본질(inhaltlicher)을 희생할 위험이 있다는 취지의 판시를 한 바 있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한 여러 사법성과지표들은 단순 양적 측면뿐만 아니라 사법부 내, 외부의 평가나 인식을 포함하여 질적인 측면을 적극 반영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사법행정조직의 전면적 재편이 진행되고 있다. 사법행정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사법의 독립이 고립이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이상, 사법행정 역시 가용 자원의 확보와 조직 내 배분을 위주로 한 자족적 활동에만 그칠 수 없다. 사법행정은 수요자를 비롯한 이해관계자들(Stakeholders)로부터의 피드백을 활발히 수용하면서 재판을 비롯한 사법서비스의 품질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 미래지향적 활동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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