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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주홍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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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가정법원에서 일할 때이다. 당사자(피고)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 내용은 “판사님이 판결한 주문에 대하여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판결 이유로 적시한 것 중 반은 진실이 아닙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은밀한 공간에서 부부 사이에 일어난 일을 정확하게 사실 인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실의 인정은 대부분 부부로부터 들었다는 사람들의 증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그 증언 내용이 신청한 당사자들에게 유리하게 포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마음에 큰 울림이 있었다. 당시에는 그 판결문을 자녀들이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부모들이 이혼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자녀들에게 보여 준다면 그 자녀들은 부모들에 대하여 객관적인 사실보다 더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될 수도 있다.

#2 부인이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하면서 부정행위를 했다며 직장 동료 여성(결혼 하지 않은 여성임)도 함께 당사자로 하였다. 그 이유는 남편과 그 여성 사이에 많은 메일이 오고 갔다는 것이다. 실은 이 여성은 남편을 업무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 사사로이 만난 사실이 없다. 메일은 모두 업무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부인이 남편과의 합의에 따라 소취하를 하자, 이 여성은 부인이 다시 소를 제기할 것이 염려되어 쌍방 합의하에 이 여성이 원고의 소취하에 동의하되 원고는 다시 이 여성을 상대로 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하는 내용의 화해권고 결정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 여성이 화해권고 결정을 받고 큰 충격을 받았다. 화해권고 청구원인에 원고가 이혼 사유로 주장한 모든 내용이 그대로 적혀 있는 것이었다. 결정문 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진다면 이 여성의 명예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상을 입게 된다.

판결문은 영구 보존된다. 그 판결문을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도 볼 수 있다. 이제는 판사들의 입장에서 판결문을 작성할 것이 아니라 재판받는 사람의 입장을 배려하여 판결문을 작성하였으면 좋겠다. 결정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는 사법부의 모습이 아닐까.


강영호 원로법관 (서울중앙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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